말라위의 나이팅게일 백영심 선교사

그녀는 스멀스멀 암세포가 몸속에 퍼진 것도 알게 됐다. “오랜 숙원인 의과대학을 세울 날이 멀지 않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힘껏 일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어요. 말라위를 고향처럼 여겨주실 분 어디 안계신가요?”


“살다보면 삼키기 힘든 고통이 실제가 되기도 한다. 말라위에서는 물만 겨우 삼키게 될 정도가 돼서야 병원에 와서 식도암 진단을 받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내시경으로 식도를 꽉 막고 있는 암세포 덩어리를 확인하고, 난감한 표정으로 확인시켜주고 나면, 그냥 지쳤다. 그래. 그냥 지쳐버렸다.”

 

매일 환자들을 괴롭히는 병마와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는 백영심 선교사의 일기다. 1990년, 28세에 대학병원 간호사 자리를 내려놓고 아프리카로 떠난 지 스물 한해, 149cm의 작은 체구였지만 강단이 있던 여성은 어느덧, 말라위에서 ‘작은 거인’, ‘병 고쳐주는 작은 천사’로 불리는 존재가 됐다.

“2009년 여름, 한 산모가 병원으로 후송되어 왔어요. 집에서 세쌍둥이를 출산했는데, 아이들은 저체중이었고 산모는 출혈이 심하여 생명이 위독했던 상태였죠. 인큐베이터가 없어 아이를 둘 곳이 없었는데, 한 간호사가 주도해 플라스틱으로 임시 인큐베이터를 만들어 신생아들을 살렸어요. 건강하게 눈을 뜬 산모와 가족은 ‘예전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라며 연방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어요.”


# 병원부터 의과대학까지… 말라위 의료기반 다져

백 씨는 말라위 릴롱궤에서 ‘대양누가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2008년에 완공된 대양누가병원은 200병상이 마련되어 있고, CT 촬영기계와 초음파 장비 등 첨단 의료장비를 갖춘 말라위의 대표적 의료기관이다. 특히 환자들이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어, 먼 지역이나 인접 국가에서도 대양누가병원을 찾는다. 2009년에만 1333명의 신생아가 병원에서 태어나 말라위 대통령이 직접 와서 감사인사를 전했을 정도이다.

백 선교사와 말라위의 만남은 우연적이었다. 젊은 시절, 간호학교 재학 중에 그리스도인이 된 백 씨는 언젠가 케냐의 맛사이 부족에게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인상 깊게 들었다. 고려대 부속병원에 취직한 이후에도 케냐인들의 아픈 모습이 상상되어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없었다. 현실에 안주하기 어려웠던 백 씨는 결국, 병원을 그만두고 케냐로 향했다. 2년 동안 케냐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동안, 아프리카 곳곳에서 기근과 영양결핍, 에이즈와 결핵 등의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목도하며 그들을 혈육처럼 여기게 됐다.

의료봉사를 끝내고 귀국했던 백 씨는 아예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아프리카행 비행기를 탔다. 도착해서는 버스를 타고 아프리카 인근 국가들을 여행하다가 말라위 치무왈라에서 행보를 멈췄다. 백 씨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자신이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절실함을 느꼈다고 했다.
주민 500명이 살고 있던 치무왈라에서 백 씨는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벽돌을 직접 만들어 약 99㎡(30평) 규모 진료소를 지었다. 진료소가 생기자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이 몰렸다.

“아침 문을 열기 전부터 와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아픈 것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거죠.” 생계는 주민들과 함께 꾸렸다. 옥수수 가루로 죽을 만들어 먹을 때도 있었고 한국이 생각날 때는 쌀밥을 지어 주민들과 나눴다. 밤이 되면 진료소 주변은 노천극장이 됐다. 백 씨는 나무에 흰 천을 걸어 스크린을 대신하고, 치체와어(말라위인의 80%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로 더빙한 예수 영화를 상영했다. 주민들은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고, 기적을 베풀어 주는 것에 환호하며, 백 씨를 하나님이 보내신 ‘작은 천사’,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기 시작했다. 소문을 접한 다른 마을에서도 진료를 와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진료소는 직원과 약품 등 모든 것이 부족했다.

“다섯 살짜리 어린이가 엄마에게 업혀왔는데, 헤모글로빈 수치가 치명적으로 낮았어요. 멀리 떨어진 병원으로 급히 이송하던 중에 제 팔에 얼굴을 묻은 채 영영 일어나지 못했어요. 그때부터 이들을 도울 수 있는 큰 병원을 지어달라며 울면서 부르짖었죠.”

백 씨는 병원 건축을 도와줄 사람을 수소문했다. 이 와중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대양상선 정유근 회장이 백 씨의 소문을 듣고 “현지에 큰 병원을 세우겠다”며 전화한 것이었다. 정 회장은 ‘돈을 벌면 아프리카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고 다짐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말라위 한인 교민을 만나 백 씨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정 회장은 사재를 털어 대양누가병원 설립을 도왔다.


또 이후로도 대양상선을 통해 매월 1억 원 이상씩 지원하고 있다. 병원 설립 취지를 들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일본 NGO는 의료장비를 지원했다. 미국, 대만, 노르웨이, 스코틀랜드의 선교?NGO단체들도 병원 설립에 힘을 보탰다. 작년 10월에는 병원 옆에 간호대학도 세웠다. 말라위 사람들이 의료기술을 배워야 의료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제2, 제3의 말라위 의료선교사를 찾습니다

이와 함께 백 씨는 2012년에는 의과대학도 설립할 계획을 가졌다. 작년 겨울, 후원을 요청하러 한국에 온 그녀는 후원해주겠다는 사람들의 반응에 기뻤지만, 스멀스멀 암세포가 몸속에 퍼진 것도 알게 됐다. 의사는 ‘갑상선암’이라고 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좌절했을 법도 했지만 그럴 시간도 없었다. 백 씨는 병원의 앞날이 더 걱정이었다.

“의과대학 설립을 위해서 더 바쁘게 뛰어다녀야 해요. 책임지고 병원을 운영할 사람도 필요하겠네요. 자원봉사자의 마음보다 말라위 사람들을 가족으로 대할 운영자가 필요해요. 오랜 숙원인 의과대학을 세울 날이 멀지 않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힘껏 일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어요. 말라위를 고향처럼 여겨주실 분 어디 안계신가요?”

이 말을 남기고 지난 2월 20일에 떠난 백 씨가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자신을 도와줄 적임자가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그 주인공은 김수지 박사(이화여대)로 칠순에 다다른 노장이다.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시점에 내린 결단인 셈이다. 김 박사는 2년 동안 말라위에서 간호 인력을 양성하고 말라위 보건복지부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힘쓸 계획이라고 했다.

삶의 말미에 접어든 두 노장의 결단과 헌신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젊은 세대의 동참이 절실함을 두 노장을 대신하여 간곡하게 호소한다. 재정, 재능 등 후원을 원하는 분들은 말라위의 대양누가병원에 문의하면 된다.

사진제공= 동광교회(백영심 선교사 파송교회)
편성희 기자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