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세족사역 펼쳐온 ‘데이빗 케이프 목사’

“예수님이 씻긴 발은 행복한 발입니다”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를 입고,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다 발을 씻길 대야를 걸었으며, “예수께서 깨끗이 씻어 주셨다”라고 수놓은 수건들과 물통과 의자 등 21kg이 넘는 짐을 짊어지고, 아브라함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지금까지 머무른 익숙한 자리를 떠났다.

 

데이빗 케이프 목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 <예수를 위한 바보>데이빗 케이프 지음 / 이상준 옮김 /토기장이 펴냄
네가 목회하는 자리에서 떠나라. 이제부터는 나의 종이 되어 길거리로 나가 사람들의 발을 씻어주면서 종으로 섬긴 나의 사랑을 보여주어라.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하나님의 목소리였다.
데이빗 케이프(David Cape) 목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로빈힐스 모교회의 목회자로 존경 받으며 목회해 온 성직자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음성이 들렸다. 당황스러웠다. 이 음성이 정말 하나님의 뜻일까? 14개월 동안 데이빗은 그 부르심의 진위를 파악하느라 미적대었다. 그러나 데이빗은 결국 순종했다.

 

“예수님이 씻긴 발은 행복한 발입니다”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를 입고,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다 발을 씻길 대야를 걸었으며, “예수께서 깨끗이 씻어 주셨다”라고 수놓은 수건들과 물통과 의자 등 21kg이 넘는 짐을 짊어지고, 아브라함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지금까지 머무른 익숙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주님이 명령하시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만나는 사람들의 발을 씻기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을 전했다. 데이빗은 걸었고, 아내와 자녀들은 트레일러하우스를 타고 데이빗의 동선을 따라가며 중보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길거리세족사역’의 출발이었고, 여기 한 가족의 아름다운 순종이 거름이 됐다.

데이빗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구석구석을 걸었다. 조직폭력배와 알코올중독자는 물론 동성애자와 한센병자의 발도 씻어주었고, 도시의 시장과 대통령의 발도 씻어주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인도를 받았고, 세족사역이 있는 곳에서는 치유와 기적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하고 3000km를 순례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이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떠나 중동의 여러 나라에서도 세족사역을 계속하도록 이끄셨다. 이라크에서 걸프전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게다가 이슬람국가에서 십자가를 지고 다니며 복음을 전한다는 게 목숨을 걸 일이었다. 그러나 데이빗은 다시 순종하였다.


이미 그의 순종은 오래도록 단련되어 정금 같았다. 걷고 만나고 씻어주고 전하는 모든 시간에 그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갈 길을 정하고 만나야 할 사람을 정하는 일이 그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순간은 크고 작은 순종들의 시간이었고, 지난 20년의 사역은 그런 순종들이 결합하여 응고된 결정체였다.

처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도 주님께 대꾸했다. ‘내가 미쳤지요. 진짜 이런 걸 하겠다고? 사람들이 정말 그들의 발을 닦게 해 줄까요, 주님? 완전히 바보 같은 짓이에요. 차라리 땅을 갈라서 저를 삼키도록 하시고 전혀 이런 일이 없었던 것으로 하시면 안 될까요?’ 하지만 이런 몸부림도 순종을 위한 몸부림이었을 게다. 데이빗은 깨달았다. “내가 바보가 되어야 한다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예수님을 위한 바보’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주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일이었으므로 그 결실이나 결과까지 모두 그분의 몫이었다. 주님은 데이빗에게 그저 순종하라, 말씀하실 뿐이었다. “데이빗, 나는 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발을 씻었는지 몇 명의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했는지 숫자를 세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인간적으로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네게 보여주는 것에만 순종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그저 순종할 뿐이었다. 소웨토라 불리는 거리에서도 그랬다. 주말에만 보통 5건에서 10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비슷한 건수의 강간사건이 일어나는 슬럼가였다. 데이빗이 이 거리에 접어든 지 1분도 안 되어 네 명의 험상궂은 폭력배들과 마주쳤다. “여기서 뭘 원하는 거야?” 하고 시비를 걸었고, 데이빗은 ‘나는 예수님과 함께 걷습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여주며 “여러분도 예수님에게 붙어야 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주님이 그들을 위해 어떻게 죽으셨는지, 그들의 모든 죄를 위해 이미 값을 지불하셨고 그들이 행한 어떤 일도 십자가에서 지불한 그 값을 넘어설 수 없다고 말했다.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이해되십니까?” 하고 물었고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싶습니까?” 하고 또 물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그 자리에서 영접기도를 하였다. 넷 중 한 사람은 다른 세 친구들을 보내면서 “나는 이분을 따라갈 거야” 하고 말했다. 순종의 결과는 이러했다.


데이빗은 이 순례의 길을 가며 깨닫는다. “신앙인의 길을 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주님과 함께 걷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시작하는가에도 관심이 있으시지만 우리가 어떻게 끝까지 걸어가는가에 더 관심이 많으시다. 단단한 각오로 열정적인 시작을 하는 것보다 더 깊고 지속적인 관계 속으로 성숙해져 가는 것에 훨씬 관심이 많으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배운다. 데이빗은 여기저기서 초청을 받아 간증하였다. 그의 간증은 하나님께서 길에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과 기쁨들을 나누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간증을 들으며 영광스런 긴 순례의 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실은 “90%의 고난과 10%의 영광”이었다. 어떤 날은 독수리의 날개 위로 날아오르는 것 같지만 다른 날는 온전히 인내하며 걸음걸음마다 그저 앞으로 밀고 나갈 뿐이었다.

이런 날이었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길거리는 진흙탕이 되고, 몸은 흠뻑 젖고, 입고 있는 티셔츠와 반바지도 몸에 찰싹 달라붙어 심하게 한기를 느끼는 날, 게다가 아무도 말씀을 듣고자 기다리지 않는 날,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마침내 하나님을 향해 소리를 질러대고 만다. “하나님, 이게 도대체 다 뭡니까? 제가 왜 여기 나와 있어야 하나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제가 미친 사람인가요?” 그러면 성령의 세미한 음성이 들렸다. 성령의 음성은 어쩌면 간곡하고도 애틋한 소망이었다. “아니다 데이빗. 나는 네게 인내를 가르치고 있을 뿐이란다. 그저 너를 점검하고 있을 뿐이야. 더 중요한 일을 맡겨야 하거든. 그러니 인내하며 견뎌주렴.”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과 함께 길 가는 이들이다. 그들에게 궁극적으로 남는 건 ‘순종’일 게다. 순종하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반짝이며 한 발작 한 발작을 조심스레 걸어가는 게다. 그러나 순종의 결과는 화려하다. 그 화려한 10%의 순간을 위해 어쩌면 90%의 순간을 인내하며 걸어야 하는 일인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90%의 그 과정조차 10%에 포함되어 100%의 화려함으로 와 닿을지 모른다. 그렇게 깊은 순종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씨앗이므로 하나님은 그리도 간절하게 또 애틋하게 당신의 자녀들을 향해 말씀하시는지 모른다.
‘인내하며 견뎌주렴. 순종해주렴.’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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