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혼탁한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우리 모두에게 일반적으로 편만해 있는 경건주의(pietism)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우리의 신앙의 능력을 얼마나 제한시키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경건주의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맺는 개인적 관계와 영혼 구원을 아주 강조한다. 물론, 하나님과 우리의 개인적 관계는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과 더불어 친밀한 개인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면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신앙은 하나님과 나 개인이 맺는 개인적 관계 차원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개인적 관계는 우리의 사회생활과 결코 분리시킬 수 없다. 경건주의는 개인의 경건생활을 아주 강조하지만 우리의 전체 삶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소홀히 여기기 쉽다. 예를 들면, 경건주의는 도적질하지 말라, 담배를 피우지 말고 술을 마시자 말라, 그리고 간음하지 말라는 등의 개인적인 계명은 아주 강조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회문제에 어떤 관심을 갖고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와 같은 보다 거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심을 갖지도 않고 분명한 지침도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다. 경건주의는 마치 우리의 일반적인 생활을 떠나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와 같은 잘못된 관점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경건주의자들이 실재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이원론적 관점으로 대치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경건주의자들이 범하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오류 중 하나다. 경건주의자들은 성경에 나오는 ‘세상’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의미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고 있다. 성경은 세상을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세상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다. 이것은 세상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존재론적이며 구조적인 의미이다. 성경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그리스도가 없는 우리의 삶의 영역, 다시 말하면 아직도 여전히 죄의 지배 가운데 있는 세상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세상은 분명히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다.

경건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세상의 두 가지 의미를 구분하지 못하고 세상에 대한 존재론적 의미와 종교적 의미를 혼동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창조 세계를 본질적으로 선하고 거룩한 영역과 본질적으로 악하고 세속적인 영역으로 너무 쉽게 분리시켜 버린다. 그리고 실재의 거룩한 부분은 보다 높은 영역이고 세속적인 부분은 보다 낮고 저급한 영역이라고 잘못된 평가를 한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적인 삶 보다는 항상 하나님, 하늘, 기도와 묵상, 영적인 것,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한 영혼 구원 활동인 전도와 선교 등과 같이 항상 보다 더 높고 거룩한 영역에 초점을 두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많은 찬송과 경건에 관한 책들은 이런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거친 세파에 실패했거든...”,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에는 이와 같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찬송들이 너무 너무 많다.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어떤 전제를 가지지 않고 백지 상태(tabula rasa)에서 읽지 않기 때문에 경건주의자들이 성경으로부터 이와 같은 자신들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주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이들은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인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25-34).  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마 6:9-2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요 18:3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며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2).
 

이것이 바로 경건주의자들이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소위 대위임령(마 28:19-20)에 대해서는 많은 강조를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최초로 주신 명령인 문화적 명령(창 1:28; 2:15)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거나 강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이원론적 관점은 영원한 징벌과 사망으로부터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선교의 열정은 아주 강하지만 이 세상에 대해서는 진정한 관심과 참여가 없는 영향력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해 내기가 쉽다. 우리가 진정 세상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잘못된 경건주의를 배격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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