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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이 드는 세월을, 일상을 더 사랑합시다
[102호] 2011년 02월 23일 (수) 옥명호 @

-황혼녘까지 지기로 함께할 C형과 K형에게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순재(김만석)/ 윤소정(송씨)/ 송재호(장군봉)/ 김수미( ) 주연, 추창민 감독, 2011년.

 

오랜만에 영화를 보다 울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다가도 슬픈 장면에선 여지없이 눈물이 터지는 사람인지라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요. 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울었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겠네요. 부모님 생각에 눈물 찍, 가슴 아픈 장면에서 눈물 쏙….
“오늘 뭐 했어? 얘기해줘-.”
“출근해가(출근해서) 매리치(멸치) 궁물에다….”

장성한 세 자녀를 떠나보내고 둘만 남은 부부는 날마다 별다르지 않은 일상적인 대화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치매 걸린 아내는 하루종일 닫힌 대문 밖 세계로는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방안에서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보냅니다.

택시 기사였으나 은퇴하여 이제 주차장 관리인으로 일하는 장군봉 노인은 퇴근하자마자 대문 열쇠를 따고 들어가 아내부터 살핍니다. 치매를 앓는 뒤로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아내는 옷에 볼일을 보기 일쑤지만, 그런 아내를 씻기고 돌보는 것조차 군봉 할아버지에게는 ‘혼자’가 아닌 ‘함께’여서 좋은 인생일 따름입니다.

오토바이로 새벽을 깨우는 우유배달원 김만석 노인은 ‘까도노’(까칠한 도시 노인)라 부를 만합니다. 육두문자를 토핑처럼 얹어 버럭 내지르는 말투와 성깔은, 곰살궂은 군봉 할아버지와는 영 딴판으로, 제대로 까칠합니다.

그런 그가 언제부턴가 매일 새벽 골목에서 마주치는 폐지 줍는 송씨 할머니에게 마음이 끌립니다. 빈 우유팩을 따로 자루에 챙겨서 배달 오토바이에 싣고 할머니에게 쭈뼛거리며 다가갑니다. 자꾸 보면 정든다고 어느 틈에 둘 사이에는 애틋한 마음이,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 거지요. 징용 끌려간 아버지가 미처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탓에 평생을 이름 없이 송씨라고만 불렸던 할머니는,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으며 신분증도 없이 사회 속에서 고립된 채 홀로 늙어왔습니다.

어느날 늦잠을 잔 군봉 할아버지가 정신없이 출근하느라 그만 대문을 잠그지 않고 뛰쳐 나오고, 기다렸다는 듯 할머니는 내의 차림에 슬리퍼만 신고 신이 나서 대문 밖 세계로 나섭니다. 숨이 멎을 지경으로 뛰어다니던 군봉 할아버지는 만석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아내를 찾게 되고, 이 일로 노년의 두 커플이 서로 지기(知己)처럼 가까워지게 되지요.


그러나 일출의 날햇살보다 석양의 노을빛에 더 가까이 다가선 이들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일평생 아내와 함께해 온 군봉 할아버지에게 죽음보다 두려운 건 혼자 남게 될 시간입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눈 뜨고 꿈꾸는 것 같은” 행복을 사는 이뿐 할머니에게 당장의 이별보다 두려운 것도 결국 혼자 남게 될 시간입니다. 그래서 한 커플은 함께 죽음을 택하고 다른 커플은 각자 헤어짐을 택합니다. 

영화관을 나서고 자정이 넘어가는데도 가슴이 먹먹한 게 가시질 않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곧 우리 이야기였으니까요. 미구에 닥칠 우리 세 부부의 미래였으니까요. 아무리 “웬만하면 100세까지 산다”는 시대여도 결국 늙음과 죽음을 피해갈 인간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하나같이 자기가 모실 거라고 큰소리치던 자식들이 다 떠나가고 둘만 남은 고단한 노년일지라도, 아내와 함께하는 여생을 소중히 여기며 “오늘 뭐 했어?”라는 매일의 물음에 조곤조곤 충실히 대답하는 군봉 할아버지에게서 ‘지금’을 사는 내공을 배웁니다. 결국 홀로 남겨지는 시간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하루가 주어질망정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삶을 택하는 만석 할아버지에게서 ‘사랑’의 삶을 배웁니다.

친애하는 K 형, 그리고 C 형! 우리 ‘함께’ 지기로 늙어갈 세월을 두려워하지 말기로 합시다. 아내와 ‘함께’ 저물어갈 삶을 아름답게 수놓을 수 있게, 지금 이 시간을 충실히 사랑합시다. 글을 못 배운 이뿐 할머니를 위해 ‘그림 편지’를 보낸 만석 할아버지의 사랑법을 배워, 내 기준을 수시로 내세우는 강압을 내려놓고 상대의 눈높이로 내려가는 사랑을 합시다.
“혼자 남는 게 두려웠다네. 긴 세월 우리는 늘 함께였으니까.”

군봉 할아버지가 남긴 편지 한 구절처럼 언젠가 우리에게도 ‘두려운 순간’이 닥치겠지만, 사랑 고백이 쑥스러운 나이가 되어서도 끝까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할 말은 하며 살아갑시다. 더 깊이, 두려움 없이 사랑합시다.
<나이트라인>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남긴 모리 교수의 말로 이 글을 맺으렵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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