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만드는 소리 ▶ 청년들의 도서관에서


도서관의 구석 자리는 언제나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이 차지하였다. 그들의 일과는 한결같았다. 새벽 일찍 도서관에 도착해 늘 앉는 자신의 자리를 점하고 다들 자리를 뜬 한밤까지 그 자리를 지키다가 뻐근한 목을 짓누르며 도서관 문을 빠져나왔다. 그들 가운데 Y형이 있었다.

학교에서 ‘합격 영순위’로 꼽히던 형을 만난 건 어느 해 봄날이었다. 전도한답시고, 대학생선교단체가 매주 드리는 예배에 나오실 수 없느냐 했더니 형이 그랬다. “직장생활까지 하다가 이 나이에 대학에 들어온 까닭은 오직 사시합격 때문이다. 합격증을 받기 전에는 다른 어떤 생각도 하지 않을 거야.”
그러던 형이 어느 날 예배시간에 모습을 비쳤다. “그냥 오고 싶었다.”

그랬지만 형은 갈등이 심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도서관 형의 자리엔 전에 없던 성경이 놓여 있었다. 성경 곳곳엔 밑줄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휴게실에서 차를 마실 때면 언제나 성경에서 본 소중한 구절들을 내게도 나눠주었다. 그 뒤 시험을 앞두고 고시원에 들어간 형은 며칠 뒤 우리의 철야모임에 나타나 대뜸 이런 간증을 했다.

“주님을 알고 난 뒤 고민 하나가 늘 따라다녔습니다. 나는 왜 사시에 목숨을 걸고 있나? 전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가난했던 가정, 어떻게든 남부럽잖은 권세를 가져야 한다는 야심, 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주님 앞에서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알게 된 것이 ‘보호관찰사’란 제도입니다. 죄를 범한 청소년들에게 재범하지 않도록 돕는 일, 나처럼 어렵게 자란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일, 처음엔 그저 좋은 일이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제 마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일 예배 때였습니다. 헌금시간에 갑자기 이런 마음이 생기더군요. 나를 살리기 위해 당신을 내어주신 하나님께 나는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으레 지갑을 꺼내느라 양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지갑과 함께 손에 잡힌 것은 사법고시 수험표였습니다. 동시에 보호관찰사가 떠올랐고 나도 모르게 수험표를 헌금주머니에 담아 버렸습니다. 제게는 한낱 야망에 불과한 사법관 대신 보호관찰사가 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예배당을 나오며 바라본 봄 하늘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정말 예전엔 몰랐습니다.”

그리고 Y형은 그해 보호관찰사 시험에 합격했다.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도서관엔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이 고시생처럼 밤을 밝힌다. 만성 청년실업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Y형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글=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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