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겔 바우 홍성훈 마이스터의 스승 ‘요한 클라이스’

내 인생의 한 사람
▶오르겔 바우 홍성훈 마이스터의 스승 ‘요한 클라이스’


스승님은 내게 톱밥을 쓸고 화장실을 치우는 바닥생활부터 시켰다. 기타연주를 위해 독일까지 유학 와서 그렇게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처량하고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스승님은 나를 마이스터에 올려놓으셨고 이제 마이스터가 된 제자에게 부탁하셨다. “너는 한국으로 가라. 그리고 거기서 ‘홍(나의 성)의 악기’를 만들어라.”


파이프 오르겔은 연주하는 사람이 준비되지 않으면 소리가 연주자를 거부한다. 연주자와 하나의 호흡을 이룰 때 오르겔은 창조세계의 모든 소리를 울려낸다. 그래서 파이프 오르겔은 배합의 악기다.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재료이고 그 소리 중 몇을 파이프 곧 피리에 담아 한데 모은 것이다. 전자악기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소리이고, 다른 악기와도 뚜렷이 구별되는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그 소리가 홀 안을 충만하게 채워간다. 그래서 파이프 오르겔은 어느 공간에 세워지느냐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또 연주하는 시간 외엔 공간의 일부로 조화롭게 서 있어야 하므로 외형까지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는 악기다.

 

600가지의 색이 섞여 흰색의 순수에 가까워지는 빛의 섞임처럼 파이프 오르겔의 소리 배합 역시 신기하게도 섞으면 섞을수록 혼탁해지는 게 아니라 더 맑고 깨끗한 하늘의 소리에 가까워진다. 인공이 섞이지 않은 자연의 소리인 까닭이다. 그러기에 파이프 오르겔은 무엇보다 예배를 위한 악기로 적합하다. 축복의 기운으로 연주하는 악기라고도 말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이런 자연의 소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철근처럼 억센 소리들, 설교까지 포함하여 우리는 소리가 없는 예배, 소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예배를 드려온 지 오래다. 게다가 전자악기에서 울려나오는 인공적인 소리가 자연의 소리를 수탈해 버린 공간이다.

 

내게 오르겔 건축을 가르친 스승은 요하네스 클라이스이다. 세계의 3대 오르겔바우로 손꼽히는 거장이다. 나는 그의 발걸음과 숨소리까지 배우려고 애썼다. 졸대 하나를 뽑기 위해 150년 동안 똑바로 자란 나무를 고르던 스승님의 모습을 나는 보았다. 십자 나사못을 쓰면 훨씬 쉽지만 굳이 스승님은 일자 나사못을 쓰셨다. 더욱이 나무에 나사못이 박혔을 대 그 일자의 모양이 나무의 결과 어긋나기라도 하면 스승님은 뽑아서 다시 되박았다. 나는 매일 아침 첫 시간을 스승님의 작업실을 바라보며 그 분위기를 호흡하였고 마음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내가 본 스승님의 일거수일투족은 이제 내 작업실의 풍경이 되어버렸다.

 

스승님은 내게 톱밥을 쓸고 화장실을 치우는 바닥생활부터 시켰다. 기타연주를 위해 독일까지 유학 와서 그렇게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처량하고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스승님은 나를 마이스터에 올려놓으셨고 이제 마이스터가 된 제자에게 부탁하셨다.

“너는 한국으로 가라. 그리고 거기서 ‘홍(나의 성)의 악기’를 만들어라. 가서 홍은 어쩌면 누군가를 위한 아스팔트가 되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면 홍의 후대에서 파이프 오르겔 문화의 꽃을 볼 것이다.”
스승님은 ‘홍의 악기’라고 했다. 파이프오르간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텔레비전에서 신문에서 그렇게 많이 얼굴이 알려졌지만 여전히 ‘마이스터’란 자격조차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여기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 곧 ‘홍의 악기’를 만들면서 아스팔트가 되기로 작정하였다.

스승님의 말씀을 나는 잘 알았다. 많은 악기가 그렇지만 파이프 오르겔은 더욱 ‘정통’의 굴레가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의 파이프 오르겔들은 동네마다 소리가 달랐다. 오스트리아의 그것은 소리가 높기로 유명했고, 이탈리아의 그것은 왠지 흐리멍덩했다. 무엇이 정통일까, 고민하다 깨달은 건 ‘다름’이었다. 그 땅의 소리를 가지는 것이야말로 변함없는 ‘정통’이란 진리를 나는 배웠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홍의 악기’란 곧 이 땅, 내가 나고 자라고 묻힐 땅의 소리를 모은 오르겔을 의미했다. 언젠가 국악협주곡 ‘수제천’을 들으며 ‘파이프 오르겔이라면…’ 하는 생각이 솟구쳐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생황, 대금, 퉁소, 아쟁, 해금, 나발, 태평소…, 우리가 다가서기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그 정겨운 우리의 소리들이 피리로 재현되어 파이프 오르겔을 채운다면, 그 소리를 지닌 악기로 우리의 음악을, 특히 이 땅의 성가를 작곡하고 연주한다면, 그 소리들이 예배의 공간을 채우게 된다면….

 

내 생각은 그렇게 끝 간 데를 모르고 내달렸다. 게다가 ‘버들피리의 문화’가 말해 주듯 파이프 오르겔을 구성하는 피리 그 자체가 이미 우리의 악기가 아닌가. 어쨌든 ‘홍의 악기’는 그렇게 나에게서 이미 설계되고 입력되었으며, 15년째 내게 이 길을 달려오게 하였다. 그 동안 많은 교회와 성당에 ‘홍’의 이름을 새긴 오르겔을 지었다. 어떤 오르겔엔 아쟁의 소리를 배합하였고, 신라의 소리 에밀레종의 소리도 담았다. 이렇게 풍성해진 소리의 세계가 언젠가는 우리 음악의 르네상스를 열 수도 있으리라 꿈꾸어 본다.

글=홍성훈
1991년부터 오르겔바우 마이스터 과정 입문을 위해 독일의 ‘요하네스 클라이스 오르겔 바우’ 회사에 입사하였으며, 1997년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현재 ‘홍성훈 오르겔바우’ 대표이다. 개인작품으로는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소 성당 오르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파이프오르간 재구성, 봉천제일교회, 아름다운동산교회, 서울교회, 남서울은혜교회 등 수십 곳의 파이프오르간을 건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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