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룬디’ 하면 후투족 투치족이 생각날 것입니다. 인구의 약 85%를 차지하는 후투족과 군(軍)과 정부권력을 장악한 투치족, 이 두 부족의 내전으로 엄청난 대학살이 자행된 나라지요. 부룬디에서 태어나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도 열심히 노력하여 부룬디 의대생이 되고, 졸업할 땐 벨기에 대학에서 장학금 제안까지 받은 촉망받는 인턴 의사 ‘데오 그라시스’란 청년이 있었습니다. ‘부룬디 대학살’이 일어난 1994년, 이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목숨을 부여잡고 6개월간 부룬디와 르완다를 넘나드는 고통의 시간을 보낸 데오는 다행히 친구의 도움을 받아 뉴욕으로 도망칩니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 데오는 단돈 200달러가 전부였고, 영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몰랐습니다. 게다가 전쟁의 끔찍한 기억으로 심리적 불안까지 가진 최악의 조건이었지요. 식료품을 배달하며 돈을 모으고, 마약 중독자로 오해받는 ‘센트럴파크의 노숙자’로 출발한 데오는, 너무 외로워 공원에서 가끔 조깅하는 사람들에게 섞여 호숫가를 달리면서 외로움을 달랬다고 합니다.

데오는 이런 절망 속에서도 서점에서 사전을 뒤적이며 영어를 배웁니다. 그러다가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과 만나고 컬럼비아 대에 입학한 뒤 하버드 대 보건대학원, 다트머스 의대에서 의사가 되기 위한 절차를 밟아갑니다. 데오는 미국에서 이룬 엄청난 성공을 토대로 세계의 내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환자를 돌보는 NGO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2005년 데오는 부룬디에서 의료 NGO인 VHW(Village Health Work), 곧 마을보건사업을 창립합니다. 미국 시민권자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던 데오는 이제 조국 부룬디로 돌아와 후투와 투치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용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데오는 부룬디를 도망치는 그 지옥 같은 시간에도 그의 짐 가방 속에는 초등학교 때 받은 우등상과, 상으로 받은 프랑스어 사전, 의대생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임상교과서와 청진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참 모습을 잊지 않으려는 아름다운 싸움이었습니다. 이런 데오였으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돕고자 나섰을 것입니다.

데오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정말 무서운 것은 배고픔과 죽음에 대한 공포, 고된 육체노동이나 편견의 비웃음도 아니지 싶습니다. 이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고통 앞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데오란 사람이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떻든 진짜 자신을 포기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부룬디를 도망칠 때 데오가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짐 가방 속에 초등학교 때 우등상으로 받은 프랑스어 사전, 의대생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임상교과서와 청진기를 챙겼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우리 짐 가방 속에 어떤 것을 챙겨두고 살아가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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