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상실하고 나니, 예언서라고 쓰고 교회성장이라고 읽으며, 지혜서를 읽고도 교회성장만을 외치며, 복음서를 읽고도 교회성장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우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 한 번도 크고 많은 것을 선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를 갈릴리에서 시작하셨고, 갈릴리에서 땅의 사람들과 3년을 함께 사시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사흘 만에 처형당하셨다. 예루살렘 성전 체제의 기득권 세력들(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사람들, 제사장, 서기관, 헤롯 당원 등)에게 체포당하여, 로마제국의 앞잡이인 총독에게 사형 언도를 받고, 당대 최고의 극형인 십자가형에 처해졌던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로 먼저 가시어, 너희가 내 제자라면 어서 갈릴리로 오라고 하셨다. 그분이 나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 교회의 머리이시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시라는 고백 위에 세워진 공동체이다. 갈릴리 나사렛 예수가 나의 그리스도라는 고백 없이는 교회도 없다. 이 고백으로 하나 된 공동체가 바로 교회이다.

동시에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를 머리로 하는 몸이다. 그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머리이신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공동체로 그분의 부활로부터 세계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이 역사 안에 살면서 주어진 선교의 사명을 다하는 인격적 주체이다.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또한 거룩하게 구별된 공동체여야 한다.

 

# 신학적 뿌리가 약한 한국교회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성장만이 지상 목표가 되어버린 기형아가 되었다. 교회 자체의 성장을 위해서 국적 불명의 ‘교회성장학’을 도입하여 성장만을 추구한 나머지 교회의 본질에서 일탈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목회는 실종되고 경영이 판을 치는 것이 교회의 현실이다. 머리이신 예수님을 제거해버린 결과이다.

결국 머리 없는 몸뚱이들이 서로 더 큰 고기를 먹겠다고 싸우는 추태를 보이며, 사회적 공신력과 영적 지도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결국 좀비 같은 교회들은, 하나가 되게 하라 하신 주님의 명령을 무시한 채,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면서, 그래도 교회성장만이 지상 최대의 과제며 가치라고 울부짖고 있다.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상실하고 나니, 예언서라고 쓰고 교회성장이라고 읽으며, 지혜서를 읽고도 교회성장만을 외치며, 복음서를 읽고도 교회성장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우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 한 번도 크고 많은 것을 선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다. 그래도 한국교회는 예루살렘 성전을 부러워하며 교회 성장만을 위해 간구한다. 그런 한국교회, 그런 수도 서울을 보시고, 우리 예수님을 무어라 하실까? 또 눈물을 흘리지 않으실까?

어쩌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되었을까? 올바른 신학의 부재가 근원이다. 올바른 신학의 부재가, 힘의 논리가 통용되는 제국주의적 신학이 판을 치는 기형적 현실을 초래한 것이다. 신학적 뿌리가 약한 한국교회의 현실이 수많은 이단들이 기승을 부리는 기현상을 만든 것이다. 이제 신학을 무력화 시키는 교권의 횡포로부터 신학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 너는 행복자로다

당신의 몸을 던져 모든 장벽을 허무시고, 화해의 대로를 여신 예수님을 따라, 이젠 우리의 몸을 던져 이 땅에 화평과 행복을 이루는 일에 올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영접해야 한다. 사람이 교회의 머리가 되려고 하지 말고, 오직 나사렛 예수님을 머리로 모시고, 그분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며, 지금도 갈릴리에서 일하고 계신 그분께 달려가야 한다.

그렇다. 우리 스스로 머리이신 예수님을 거부했던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 갈릴리 나사렛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그분이 우리 교회의 머리이심을, 이젠 우리의 삶으로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교회다운 교회로 다시 서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이 소명을 이루기 위해, 신명기 33장 29절의 말씀으로부터 출발하려고 한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라 하신 지상 명령을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나 자신이 진정한 행복자로 당당히 서야 하는 것이다. 욕망과 탐욕의 충족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가능하다는 세속의 정서를 합리화하는 마음에서는 행복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없고, 이윤 극대화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교회에서는 행복 열매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장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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