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사오정’ 시리즈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사오정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의미가 너무도 분명한 경우조차 아예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 하는, 그래서 언제나 딴소리나 하는 대화불통의 답답한 현실을 우스개로 빗댄 것이다. 며칠 전 신통방통한 일방통행식 소통은 텔레비전 전파를 타고 안방을 점령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말귀는 그래도 알아듣는 데 지장이 없지만 혀를 날름거리며 말을 더듬는 사오정이 있었다. 어느 날 이 사오정이 백과사전 전문 출판사 영업직원 모집광고를 보고 취직 인터뷰를 하러 갔다. 자기소개를 하면서 “으으으” 하고 겨우 이름 석 자 말하는 데 과장해서 10분쯤 걸리는 말더듬이 친구를, 그것도 사람들을 상대로 해야 하는 영업직원으로 쓸 사장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퇴짜를 맞았다.

그러나 이 사오정은 포기하지 않고 그 후에도 계속 그 출판사를 찾아가 채용해 달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 사장은 어디가도 취직이 되지 않을 듯한 그가 안됐기도 하고 잘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계속 듣고 있을 수도 없고, 어차피 해 봐야 결과가 뻔해서 스스로 물러날 것이라 여기고 그를 영업사원으로 채용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외였다. 말께나 한다는 영업직원들도 일주일에 한 질을 팔기 어려운 백과사전을 이 사오정은 하루에도 몇 건의 계약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니 사장이 입이 벌어질 수밖에. 사람들이 불쌍해서 사주나 보다 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지라 어느 날 그에게 어떻게 영업활동을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사오정 왈, “사모님, 이 백과사전 사실래요, 아니면 여기서 다 읽어드릴까요?”

이 세상에는 혹 그 백과사전을 다 읽을 시간만큼을 보낸다 해도 그 마음에 있는 복잡다단한 인생사의 사연을 다 풀어낼 수 없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아마도 오늘의 시대가 인간을 그렇게 더듬거리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말 한마디 마음 편하게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보다.

온갖 눈치와 압박, 시시콜콜한 것까지 누군가의 ‘사찰’과 ‘감청’ 대상이 되는 긴장 속에서 인간의 영혼은 어느새 어눌해져 가고 있지 않나 싶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영혼의 슬픔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한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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