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친은 세배를 받으신 뒤 세뱃돈과 함께 한자 한 글자를 붓글씨로 써주셨다. 손자손녀에게 그해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글자를 골라 덕담과 함께 주셨다. 힘쓸 면(勉), 익을 숙(熟) 같이 학업에 관련된 글자가 대부분이었다.


설날의 기억은 세배와 얽혀 있다. 어른들은 세배를 받은 뒤 덕담 한 말씀과 세뱃돈을 주시는데 세뱃돈은 특히 자손들을 축복하는 의미에다 주는 기쁨도 있어서 생각할수록 복된 돈이다.
한 가정에 아이들도 많고, 먹고 살기도 빠듯했던 예전에는 누구나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의 세뱃돈을 내놓아도 되었다. 형제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다들 별 불평 없이 적은 세뱃돈에 만족했다.

그러나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요즘 세뱃돈은 예전보다 심하게 인플레이션 되었다. 수입은 늘고 세뱃돈 줄 자녀들은 줄었으니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도 그만큼 늘어난 셈이다. 세뱃돈 단가의 상승은 아이들의 씀씀이 인상으로 이어져 요즘에는 예전처럼 학용품 하나 살 정도의 세뱃돈을 주면 벌써 조카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기가 십상이다. 그러니 알게 모르게 세뱃돈에 신경이 쓰인다.

조카들에게 일일이 봉투에 넣어 줘도 엄마들은 어느 집에서 얼마를 주었는지 점심시간쯤 되면 귀신 같이 다 알게 되니, 행여 형편이 넉넉한데 세뱃돈이 예상보다 적으면 깍쟁이라느니 섭섭하다느니 하며 말이 나게 마련이고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그뿐인가, 아이들이 없는 부부는 받지도 못하고 주기만 한다며 투덜댄다. 애가 없어 가뜩이나 서러운데 설마다 뜯기는 세뱃돈을 이제껏 모았으면 생각하니 아랫배가 살살 아픈 게다. 다음에는 바쁘다고 핑계 대고 빠질까, 하는 못된 마음이 뭉게뭉게 피기도 한다. 그러니 이날은 흥부집처럼 아이 많은 집이 기가 살고 신이 난다.

세뱃돈 나올 집이 친가와 처가 둘이다 보니 행여 친조카와 처조카의 세뱃돈 액수를 달리 했다가는 그날 저녁 다발성 원형탈모 혹은 얼굴에 바둑판 그려져 있을 각오를 해야 하는데 이 또한 유의사항이다. 

하지만 부모님 선물보따리에다, 적지 않은 기름 값, 고속도로통행료까지, 게다가 고향에서 폼 한번 재려고 무리해서 새 차까지 뽑아 할부금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상태라면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게 보여도 지갑이 얇을 수밖에 없을 게다. 하지만 도시에서 잘산다고 떵떵거리며 자랑했는데 세뱃돈의 수준을 기대치에 맞추지 않을 수도 없고 정말이지 정초부터 대량 출혈사태가 야기되는 것이다.


더욱이 한번 인상된 세뱃돈은 내려오는 법이 없어서 살림걱정 하는 아내들은 철없는 세뱃돈에 호기 부리는 남편을 보며 눈을 흘기다가 기어이 말다툼에까지 이르는 집도 많다. ‘이까이꺼’ 하며 호기를 부린 남편들은 집에 가서 ‘꺼이꺼이’ 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덕담은 의례적이고 해가 바뀌어도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아 기억조차 못하는 반면, 세뱃돈은 기억에도 오래 남고 통장에까지 남으니 그것으로라도 위로를 삼아야 할지 모르겠다.

세뱃돈 이야기를 하면 선친의 특별한 ‘절값’이 떠오른다. 평안도가 고향인 선친은 피난 내려와 서울에서 사대를 졸업하시고 정년까지 교편을 잡았다. 특히 마흔둘에 장로가 되었으니 선친께는 교회와 학교, 가정 세 곳이 전부였다 해도 옳지 싶다. 럭비와 테니스가 유일한 취미셨고, 특히 달필이라 모임에선 서기를 도맡으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먹을 갈아 놓고 신문지에다 붓글씨를 가르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느 설이던가, 선친은 세배를 받으신 뒤 세뱃돈과 함께 16절지 크기의 흰 종이에다 한자 한 글자를 정성껏 붓글씨로 써주셨다. 손자손녀에게 그해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글자를 주셨는데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한자를 골라 덕담과 함께 주셨다. 힘쓸 면(勉), 익을 숙(熟) 같이 학업에 관련된 글자가 대부분이었다.

선친이 돌아가신 지 8년이 된 지금도 손자손녀들은 그때 받은 할아버지의 글씨를 소중히 간직하며 그 의미를 되뇌고 할아버지를 추억하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 세뱃돈보다 더 오래가는 세뱃돈을 주신 셈이다.  이제 집안의 가장이 된 나는, 달필도 아니고 한자에 박식하지도 않아 감히 흉내도 못 내지만 올해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아이들에게 한 글자씩 써주었다. 먹을 갈지 않아도 되는 붓펜을 써서 편하였으나 붓에 비해 운치도 덜하고, 연습까지 불충분하여 글씨가 어설펐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좋은 전통을 이어가려는 맏아들 모습에 어머니께선 흐뭇하셨는지 가산점(?)을 주셨다.

법학을 전공하는 큰 아이에게는 통할 통(通)과 더불어 외골수가 되지 않도록 덕담해 주었고, 건축을 전공하는 막내에게는 모든 익숙함에서 벗어나도록 비롯할 창(創)을 주었다. 내년에는 아이들에게 성경구절을 한 절씩 써주고 싶다. 인생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 한자도, 사자성어도 좋지만 성경구절만 한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미래의 손자들에게 마음의 세뱃돈도 넉넉히 주려면 부지런히 붓글씨를 연습하고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할 것 같다.

어렸을 적 글씨를 가르치시려고 붓을 잡은 아들의 작은 손을 그 크고 따뜻하고 두터운 손으로 감싸 쥐신 뒤 한 획 한 획 힘줄 때와 삐칠 때, 마칠 때를 가르치시던 아버지의 품이 등으로 새삼 그립다.

최은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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