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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貪政) 잡을 탐정(探正)은 이제도 절실합니다
[101호] 2011년 02월 09일 (수) 옥명호 @

시네마레터▶명탐정의 도래를 기다리는 우리 사회의 ‘서필’들에게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이 나라가 발전을 못하는 거야, 이 꼴통!” 공납 비리의 주범 앞에서 외치는 이 한 마디는 자기 사욕을 채우느라 온갖 재물과 권세를 탐하는 불공정 정치 행태인 ‘탐정’(貪政)을 바로잡는 ‘탐정’(探正)의 정치, ‘탐정’의 지도력을 희망하게 만듭니다.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김명민(명탐정)/ 오달수(서필)/ 한지민(한객주) 주연, 김석윤 감독, 2011년.

 

‘탐정’(探偵)은 본시 드러나지 않은 일, 어떤 사건의 이면을 몰래 살피고 파헤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흔히 영국 런던 베이커 거리의 하숙방에서 파이프 담배를 물고 한눈에 방문객의 직업이나 인간관계까지 파악해내는 명탐정 셜록 홈즈를 아실 테지요. 한데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군주가 친히 임명한 정5품의 특별관직으로 활동하던 명탐정이 있었다면서, 그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가 나왔더군요.

시대는 1782년 정조 16년, 전국의 공납(貢納?지방의 토산물을 현물로 내는 세금)이 증발해버리는 일이 빈번해지자 왕은 이 사건을 비밀리에 조사할 인물을 임명합니다. 이름 하여 ‘탐정’(探正). 드러나지 않은 일을 파헤쳐 올바른 것을 밝혀내는 인물이라는 게지요. 국왕이 친히 임명했으니 ‘왕립’ 탐정쯤 되겠군요. 이 왕립 탐정은 공납을 빼돌린 자가 있는지, 있다면 그 실체를 밝혀내라는 비밀 임무를 부여받습니다. 맥가이버의 손재주와 셜록 홈즈의 두뇌를 지녔으면서도 엉성하고 허술한 ‘허당’ 천재이기도 한 명탐정의 이름은 영화 내내 등장하지 않는군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던 비밀 탐정이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가던 중 공납 비리에 관여한 관원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피살자의 몸에서 각시투구꽃의 독이 묻은 사실을 밝혀내지만 본의 아니게 이 사건에 연루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 탐정은 감옥에서 만난 서필이라는 개장수와 파트너가 되어 수사를 계속해 나가지요. 탐정과 서필은 마치 홈즈와 왓슨처럼 환상의 복식조를 이루어 티격태격 좌충우돌 다투고 내달리며 사건의 실체에 한 발짝씩 다가갑니다.

본디 이 영화는 오락성 짙은 코믹 탐정극이기에 더러 오락성과 시대성, 코미디와 스릴러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갈짓자로 달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제게 재미를 넘어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은 영화 사이사이에 터져나오는 예사롭지 않은 대사와 몇몇 등장인물의 캐릭터 때문이었습니다.
“벼슬은 궁궐에 잔디 깔아주고 얻으셨소?”

탐정이 당대의 권력자에게 호기롭게 던지는 비아냥투 물음은 고위공직자 청문회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여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공납을 당대 유명화가의 그림으로 세탁하는 설정은 한때 뉴스 초점이 되었던 유명갤러리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면서, 사극을 보면서 현대극을 보는 착시에 사로잡히기도 했

지요.
“비천한 서얼들”이 나라 발전을 가로막는다며 “이 나라 조선엔 개혁 따윈 필요 없어”라고 부르대는 임 판서의 모습은 수구 정치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당대 명문 양반가의 젊은 미망인이 노비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평등 세상”의 도래를 가르치면서 “보이는 것만 믿지 말게. 때로 믿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네”라고 설파하는 장면 또한 인상 깊었습니다. 자신의 개인적 억압(‘열녀 신화’에 사로잡힌 가문)과 노비들이 처한 사회적 억압이라는 두 가지 앙시앵 레짐(ancien r?gime?낡은 체제)에 맞서는 주체 선언처럼 다가왔거든요.

사필귀정. 공납 비리의 실체가 밝혀지고 마침내 사건은 해결되며 비리의 주범은 심판을 받습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영화적 판타지이지 현실의 실제는 이와는 전혀 딴판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이 나라가 발전을 못하는 거야, 이 꼴통!”
공납 비리의 주범 앞에서 외치는 이 한 마디는 자기 사욕을 채우느라 온갖 재물과 권세를 탐하는 불공정 정치 행태인 ‘탐정’(貪政)을 바로잡는 ‘탐정’(探正)의 정치, ‘탐정’의 지도력을 희망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정녕 나라 발전 가로막는 탐정(貪政)의 “꼴통”들이 영화 속 운명을 맞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영화에서 탐정으로 암시된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의 “학연에게 답하노라”에서 천하의 큰 기준 두 가지를 말합니다. 그것은 옳음과 그름, 이로움과 해로움에 대한 기준이라는 거지요. 그러면서 이 두 가지 큰 기준에서 네 단계 등급이 나온다 했지요. 곧 옳음을 지키면서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옳음을 지켰으되 해를 입는 경우가 둘째 단계이며, 그름을 따르면서도 이익을 얻는 것이 셋째 단계요, 그름을 따르면서 해를 입는 경우가 가장 낮은 단계라는 거지요.

그름을 추종하되 해는커녕 특권적 이익을 누리는 ‘탐정(貪政)의 무리’들은 정조 16년의 조선시대에만 국한된 일은 아닐 겁니다. 탐정을 바로잡을 탐정이 오늘도 절실한 이유입니다.

옥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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