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빵에 국화는 없지만 추억은 있듯
내 안에 내가 없더라도 그분이 남기를


아줌마는 표정 없는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손짓만 씨익 하십니다. ‘2000원!’이라고 쓰인 쪽지가 붙어 있습니다. 순간 국화빵 아줌마의 싸늘한 표정과 성의 없는 손짓에 마음이 차가워집니다. ‘뭐야! 싸지도 않구만. 장사하면서 눈도 안 마주치고…. 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그때 갑자기 먼저 국화빵을 사러 온 아줌마가 이야기합니다. “이 아줌마 말 못해요!”


아파트 길목 전봇대 옆에 국화빵집이 새로 생겼습니다. 문득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말이 떠올랐지요. 또 떠오른 말이 ‘국화빵에 국화는 없지만 추억은 있다’는 근사한 말입니다. 국화빵은 어느새 추억이 되고 있었거든요.

새로 생긴 국화빵집에서는 빵을 굽는 아줌마의 능수능란한 실력이 돋보입니다. 빵틀에는 구멍이 서른 개 쯤 되어 보입니다. 한쪽 면이 익은 국화빵을 젓가락 같은 집게로 쿡 꽂아서 슉 빼어선 공중에서 다시 휙 돌려 빵틀 속으로 쏘옥 집어넣습니다. 달인 같습니다.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결국 입을 뗍니다.
“아줌마! 한 봉지 얼마예요?”

아줌마는 표정 없는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손짓만 씨익 하십니다. ‘2000원!’이라고 쓰인 쪽지가 붙어 있습니다. 순간 국화빵 아줌마의 싸늘한 표정과 성의 없는 손짓에 마음이 차가워집니다.
‘뭐야! 싸지도 않구만. 장사하면서 눈도 안 마주치고…. 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그때 갑자기 먼저 국화빵을 사러 온 아줌마가 이야기합니다. “이 아줌마 말 못해요!”

순간 뜨끔했습니다. 아뿔싸! 내가 이렇게 사람을 쉽게 판단하다니, 말 못하시는 걸 드러내지 않으려고 손짓을 한 건데. 평생 힘겨웠으니 표정이 냉랭해졌을 테고. 그런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게 스스로에게도 부담이었을 테고, 게다가 대하기 힘든 손님은 기다리고 서 있고….

그건 그렇고 당사자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이 아줌마 말 못해요”라고 말하는 이 아줌마는 또 누구일까? 그의 말은 비아냥일까? 솔직함일까? 자신의 말이 누군가에게 어떤 상처의 흔적이 될지 그는 알고나 있을까? 그는 국화빵 봉지를 받아 들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걸어갔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저는 주전자에 든 밀가루 반죽이 빵틀에 쭈르르 흘러내리는 모습을 멀뚱멀뚱 쳐다보면서 “이 아줌마 말 못해요!”라는 생뚱스런 말의 의미와, ‘말을 못하는 국화빵 아줌마는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 오셨을까’ 하는 상상을 번갈아가며 해봅니다. 또 함부로 사람을 판단해버린 저의 부끄러움에 한숨을 쉬어봅니다.

잠시 후 국화빵 아줌마는 두 손으로, 여전히 고개를 숙이신 채 국화빵 봉지를 저에게 건네십니다. 저는 빵값을 낸 뒤 국화빵이 든 봉지를 들고 냉큼 나옵니다. 아픈 누군가의 영혼에 상처를 더한 것 같아 참 불편한 마음을 함께 담아옵니다. 그날 추억의 국화빵은 결국 아픈 빵맛을 주고 말았습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국화빵 아줌마는 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좌절을 맛보셨을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오해와 사람들의 쑥덕거림에 그나마 낮은 자존감이 얼마나 밟혔을까. 온갖 상처로 얼룩진 아줌마의 상심을 누가 눈여겨 봐주었고, 또 누가 따뜻하게 품어주었을까.

정작 제 모습에선 그런 향기를 찾아볼 수 없음이 부끄러웠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 했던가요. 한 영혼을 위해서라도 노래의 장을 펼쳐야지 하는 저의 다짐들이 얼마나 가볍고 아둔하게 느껴지던지요. 길은 그저 아득히 멀어 보였습니다.

누군가의 가슴
다 울리지 못해
나 아직

아니네

이 좁은 가슴
다 울지 못해
나 아직

아니네

다 울지 못하네
다 울지 못하네

-한희철의 ‘종’


‘장미를 사랑함은 가시까지’라는 말을 잘도 했지만 살아오면서 아픈 이들의 가시를 얼마나 많이 비난했을까 생각하면 두렵습니다. “이해가 되냐고?”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믿음은 이해 그 이상”이라고 말해 놓고선 이해는커녕 얼마나 많은 오해를 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라고 노래한 윤동주 시인의 시구처럼 올해는 성장보다 성찰을, 앞날의 희망보다 지나온 발걸음을 더 아름답게 정돈하고 싶습니다. 길들여져 익숙한 걸 더 좋아하는 저를 보며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워합니다.
하여 노래가 삶이되기보다 삶이 노래가 되길 희망합니다. ‘국화빵에 국화는 없지만 추억은 있다’는 말이 ‘내 안에 나는 없지만 그분의 흔적이 영원히 남았다’고 표현되는 삶이기를 꿈꿉니다.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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