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의 코드로 짚어본 한글성경 번역 100년

성경의 한글번역은 한문을 모르던 일반 대중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시작됐다.  성경을 접하고 감동받은 이들은 곧 삶의 변화를 체험했고, 그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산간벽지로 향했다. 마침내 그들의 열정은 불평등한 사회를 변혁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글 성경전서가 출간된 지 100년을 맞았다. 지난 1월 20일 대한성서공회는 한글성경 100주년 선포식을 열고 1911년 구약전서가 완역된 의미를 되새겼다.
이사장 김순권 목사는 “한국교회가 오늘날까지 하나의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하다”며 “성경을 통해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통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인간의 죄가 만들어낸 혼돈의 세상과 그것을 사랑과 정의로 새롭게 하려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난다. 이러한 만남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는다. 처음 성경을 접한 우리의 신앙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 감동 : 번역하다가 세례받기로 결심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성경을 그 나라 말로 번역하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외국 선교사가 조선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한글 성경이 읽히고 있었다. 이는 세계의 선교 역사에 비춰 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다.

 

선교사가 조선 땅에 들어오기 전인 1882년에 한글로 번역된 최초의 성경은 <예수셩교 누가복음전서>이다. 만주에서 간행된 이 성경은 중국선교사로 와 있던 스코틀랜드 로스(J. Ross) 목사와 그의 매제 매킨타이어(J. MacIntyre), 그리고 서상륜, 이응찬 등 한국인 개종자들에 의해 번역되었다.
여기에 참여한 한국인 개종자들은 단순히 성경번역만 한 것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났다. 1879년 백홍준과 이홍준을 비롯한 4명의 한국인이 매킨타이어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것은 한국 개신교 최초의 신앙공동체였다.

 

이들은 성경을 통해 기독교를 접하고 신앙을 고백했다. 그리고는 고향으로 돌아와 뜨거운 신앙을 친지들과 이웃들에게 전했다. 이 땅 최초의 교회, 소래(솔내, 松川)교회 역시 이렇게 세워졌다.
물론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이었다. 당시 우리의 신앙 선배들은 적극적으로 성경을 받아들이고, 주체적으로 기독교를 수용한 것이다.


# 배려 : 한글번역은 “대중들을 위한 것”

당시 성서공회는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하려고 한글자모표를 만들어 제공하기도 했다. 특히 각처로 돌아다니며 전도하고 성경책을 팔았던 권서인들은 자모표를 나눠주고, 일과가 끝난 후에는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모아 가르쳤다. 물론 한글을 배우는 교재는 성경책이었다.

권서인들이 마을을 방문하면 학동들은 성경을 가지고 와서 글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또한 부녀자들은 대부분 글을 읽지 못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권서부인들은 그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성경의 한글번역은 한문을 사용하는 소수 식자층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시작됐다. 초기에는 번역에 순수 한글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천주교에서는 텬쥬(天主)로 표현하던 것을 ‘하?님’이라는 순우리말로 번역한 것도 그래서이다. ‘하?님’은 당시 일반 민중의 언어였던 동시에 한민족의 얼 속에 전승 되어온 유일신 개념이었다. 이 단어를 사용할 때는 낱말 앞뒤로 한 자를 띄어 적었는데, 경외의 대상을 적을 때 사용하는 동양식 표기였다. 생소한 개념이었던 세례와 안식일도 각각 ‘밥팀네’, ‘사밧일’이라고 표기,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한편 <예수셩교젼셔>에는 평안도 사투리와 토박이말이 많이 발견된다. 평북 의주의 평민 신분이었던 서상륜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이 아달 예수 키리쓰토 복음의 처음이라 션지 이사야 써사되 보라 내가 내의 사쟈? 너희 앞페 보내여 너희 길을 에비?며”(마가복음 1장 1-2절).
한양 중심의 이남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이북지역 변방에 머물던 사람들에게는 옆에서 누가 이야기를 해주는 것만큼이나 실감 나고 친숙한 책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 열정 : ‘복음짐’ 지고 산간벽지로

만주에서 번역된 한글 성경은 개종자들과 권서인들에 의해 확산되어 읽혀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마을마다 성경을 짊어지고 들어가 복음의 씨를 뿌렸다.
전도사업이 금지되었던 시기도 있었던 만큼 이들의 활동은 목숨을 건 복음전파였다. 특히 전도부인들의 어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리를 걸었고, 선교사들이 미치지 못하는 시골이나 산간벽지에서 활동했다. 한 권의 책도 못 팔 때가 잦았지만 인내와 믿음으로 시련을 이겨냈다. 당시의 한 선교보고서에는 권서인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겨져 있다.

“때때로 그는 온종일 한 권도 팔지 못한 채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기회를 잡아서 복음서 이야기를 해준다. 그는 책을 팔지 못할지라도 그의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안다. 종종 그는 알려지지 않은 퇴락한 마을에 도착한다.”

이들은 성경책과 찬송가, 교리문답서, 선교달력 등을 담은 ‘복음짐’을 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가난해서 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쌀, 콩, 계란, 감자 등을 받고 교환해주기도 했다. 권서인들은 쓸모가 없는 싸리 껍질 등과도 성경책을 바꿔주었는데, 이같은 모습은 복음을 반대하던 사람들도 감동하게 했다.

조선 땅을 밟은 언더우드 선교사는 “씨를 널리 뿌릴 시기였음에도 동시에 우리는 첫 열매를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초기 선교사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의 주요활동 중 하나가 세례를 주는 일이었는데, 복음을 전하기도 전에 이미 기독교를 믿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거운 복음짐을 지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했던 권서인들 덕분이었다.

권서인들의 열정은 복음을 전하러 온 선교사들에게도 감명을 주었다. 한 선교사의 보고이다.
“지난 가을 강계에서 50마일 떨어진 곳에서 엄청난 삼을 지고 오는 그를 길에서 만났을 때였다. 시골 사람들은 돈이라고는 만져볼 수 없어서, 책과 삼단을 맞바꾼 것이 마침내 커다란 짐이 된 것이었다. 그를 보자 말 위에 앉은 내가 부끄러웠다. 그는 벌써 20마일은 그렇게 왔음이 분명했고, 앞으로 50마일을 더 가야 그 짐을 벗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 변혁 : 불평등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

성경의 번역으로 ‘상민’의 글자로 천대받던 한글의 위상이 달라졌다. 그리고 무시당하던 여자들도 성경을 읽으며 교회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남녀가 함께 예배도 드리고, 성경을 읽으며 한글을 익혔다.
이같은 변화는 500년 동안 조선을 지배하던 유교 사회를 뒤바꾸는 힘이 되었다. 당시 유교는 종교인지, 사회제도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모든 삶의 영역에 구석구석 침투해 있었다. 그런데 당시 개혁적이었던 실학자들도 하지 못했던 이 근본의 변화를 기독교가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불평등과 차별의 제도 속에서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이러한 성경을 읽으며 사람들의 내면은 변화해갔다. 성경은 무엇보다도 인간 내면의 근본을 건드렸다.
당시 기독교로 개종한 한 양반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 친구들은 내가 미쳐 버렸다고 말하면서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러나 참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은 미쳐버린 징조가 아니다. 사실 나는 양반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는 양반으로, 또한 어떤 이는 상놈으로 만드시지 않았다. 인간들이 그러한 구분을 지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드시었다.”

이렇듯 성경을 접하고 감동받은 이들은 삶의 변화를 체험했고 그것을 전하기 위해 열심을 다했다. 그리고 그 열정은 마침내 사회를 개혁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한 선교사와 개종자들, 그 성경을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권서인들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었던 변화였다.


#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성경은 수차례 개정이 되었고, 그 형태도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클릭 한 번이면 원하는 성경 구절을 찾을 수 있고, 언제든지 휴대전화로 성경을 볼 수 있다. 새롭게 번역을 할 필요도 없고, 성경을 전해주기 위해 무거운 짐을 지고 시골로 향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 “그렇다면 우리는?”이라는 질문이 남는다. 어떻게 옛 신앙 선배들의 열심을 이어 사람들에게 복음과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이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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