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명호의 시네마레터▶사랑을 절대화하는 우리 곁의 수많은 ‘연희’에게

 

 

<심장이 뛴다>김윤진(채연희) 박해일(이휘도) 주연, 윤재근 감독, 2011년 작품.

 

단정함이 묻어나는 유치원 원장에다 딸아이에게 깊은 헌신을 보이는 싱글맘의 애절한 모성애와, 불우하게 자라 본 데 배운 데 없이 양아치처럼 살면서 어머니 돈 ‘삥뜯던’ 아들의 뒤늦은 효성이 서로 대립할 때,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는 뻔한 일 아니겠는지요.


“전 그냥… 그냥…, (딸을) 살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죽어가는 어린 딸을 둔 엄마가 있습니다. 딸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심장 이식. 그건 누군가는 반드시 죽어야만 가능한 일이지요. 타인의 죽음이 나의 생명을 담보하는 이 대립 상황은 절실하고도 절박한 긴장을 예고합니다.


싱글맘 연희 vs. 콜떼기 휘도

일찍 사별한 남편에게 딸을 잘 키우겠노라 약속한 ‘싱글맘’ 연희는 예은이를 살리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시시각각 생명의 불꽃이 사위어 가는 딸을 무기력하게 바라봐야만 하는 엄마의 심장인들 온전할 리 만무합니다. 망설이고 주저하다 장기 밀매 조직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엄마의 모성애는 자기 딸밖에 보지 못합니다.

 

또 한편에는 혼수상태로 죽어가는 엄마 곁에 아들이 있습니다. 수술해도 가망 없는 엄마입니다. 어릴 적 자기를 버린 엄마가 재혼하여 잘사는 줄로만 아는 아들은 엄마가 쓰러지기 전까지 수차례 목돈을 뜯어내곤 했습니다. 밤 업소에 나가는 아가씨들의 콜을 받고 기사 노릇을 하는 ‘콜떼기’(나라시) 휘도는 그러나, 엄마의 궁핍하고 궁색한 실제 삶을 알고 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효도를 가망 없는 수술로 대신하려 하지요.

영화는 휘도 어머니의 심장이 절실한 연희와 엄마가 죽기 전 한 번이라도 효도하려는 휘도의 대결 국면으로 돌입하면서 급격한 서스펜스를 몰고옵니다. 연희의 모성애(maternal love)와 휘도의 효성(filial duty)이 적대적 모순의 대결과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거지요. 우리말에 모성애(母性愛)에 대응하는 자성애(子姓愛)라는 말이 없듯, 스크린 바깥에서 이 양자 간의 대결을 지켜보는 관객의 판결이 어찌 될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될 터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vs. ‘사랑이 곧 하나님이다’


시간이 갈수록 연희의 모성애는 점점 더 대범하고 대담해지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내달립니다. 장기 밀매 브로커와 손을 잡고 환자 탈취를 시도하거나 무력을 행사하는 등 불법과 폭력을 모성 실현의 수단으로 삼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모성의 사랑은 점점 더 그 사랑 자체를 절대시하면서 모든 행위와 과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건 적이 제 마음을 불편하게 하더군요.

자식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고 내던지는 ‘어머니의 사랑’이란 C. S. 루이스가 <네 가지 사랑>에서 말한 그 ‘신적 사랑’ 곧 ‘선물의 사랑’(Gift-love)과 비슷한 유사성(likeness to God)을 지닌 것입니다. 그 사랑은 마침내 ‘신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C. S. 루이스는 일찍이 “단순히 동물적이고 저급한 욕망”보다는 “신실하고 진정한 자기희생적 열정” 같은 고귀하고 순수한 가치일수록 신성(神性)을 내세워 신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간파한 바 있지요.

“인간의 모든 사랑은 최고 정점에 이르렀을 때 스스로 어떤 신적 권위를 주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사랑의 음성은 마치 하나님의 음성인 양 들려옵니다. 그 사랑은 우리에게 대가를 계산하지 말라고 말하며,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고, 다른 주장들은 모조리 깔아뭉개며, 진심으로 ‘사랑을 위해’ 한 일이면 뭐든지 다 합법적이며 심지어 훌륭하다고 에둘러 말하기도 합니다.”(<네 가지 사랑>, 22쪽, 홍성사)

그러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는 진리가 어느새 그 정반대 의미인 ‘사랑이 곧 하나님’이라는 말로 변할 수 있”는 위험을 늘 경계해야 할 터입니다. 그런 점에서 “엄마가 무섭다”고 한 딸의 말은 죽비와도 같이 연희를 내리칩니다. “사랑은 신이기를 그칠 때 비로소 악마이기를 그친다”는 철학자 루즈몽(M. Denis de Rougemont)의 통찰에서 보듯, “사랑은 신이 되기 시작하는 순간, 악마가 되기” 때문에 전에는 ‘천사 같던 엄마’가 이젠 무서워 보이는 거지요.

연희는 딸아이의 말에 휘청거립니다. 병원 대기실에 주저앉아 거울 속 자기 얼굴을 응시합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도 거울 앞에 서는 ‘응시의 시간’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목표를 향해 뛰고 달리는 사이, 본연의 제 모습을 잃고 어느덧 목표가 신이 되어 주위를 억압하고 있지나 않은지.

옥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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