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 ‘그림자 나라’를 떠난 루이스 교수님께


평안하셨는지요? 그림자 나라(shadowlands)에 유배 중인 제가 아슬란 님과 더불어 본향에 계신 교수님께 평안을 여쭙는 게 앞뒤 바뀐 인사라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그림자 나라에서 사셨으니 이곳 인사법을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아 참, 잭이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평생 친구들에게 그리 불리기를 원하셨고, 저로서도 당신의 한국어판 저서를 꽤나 편집한 인연이 있으니 잭이라 부른들 그리 타박하시진 않겠지요?)

저희 아이들과 잠자리에서 즐겨 읽었던 《나니아 연대기》를 <캐스피언 왕자>를 끝으로 영화로는 영영 못 보는 줄 알았습니다. 월트디즈니가 후속편 영화 제작에 난색을 보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거든요. 저나 저희 아이들은 일곱 권짜리 나니아 시리즈를 읽어나가면서 과연 어떤 이야기가 영화로 나올까 궁금해하면서 잔뜩 기대하곤 했답니다.

캐스피언 다음에야 새벽출정호가 나올 차례였지만, 어린이들이 나오는 가족용 판타지 영화 수준으로는 기대 수익에 미치지 못했는지 기대하던 영화 제작-개봉박두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지요. 그런데 기대하지 않은 소식은 예기치 못한 기쁨을 주고도 남았습니다. 잊고 지내던 중 아이들과 함께 극장에 갔다가 <새벽출정호의 항해> 홍보물을 본 순간, 아이들도, 저도 완전 흥분했지요.


“모험을 피하면 명예도 없다”

잭, 저희 아이들은 영화로는 이번 ‘새벽출정호의 항해’를 첫 손에 꼽았습니다. 영화 이야기로 한동안 저희 집 저녁 식탁이 떠들썩했지요. 두 녀석이 서로 먼저 말하려고 싸울 정도였지 뭡니까. 나니아 시리즈 중반 이후부터 나오지 않는 근사한 두 주인공 피터와 수잔에 대한 아쉬움도 얘기했지요. 한번 새겨진 캐릭터들을 계속 내세우는 시리즈물의 상식을 당신은 따르지 않았지요. 물론 아이들이 나이를 먹게 되면 이성 문제나 진로, 직업 같은 현실 세계의 일을 고민하느라 판타지의 세계, 나니아는 관심 밖이 될 테니 그들의 퇴장이 아쉽긴 하지만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저희 아이들도 나니아 영화 이야기로 서로 말다툼하지 않을 시간이 다가올 테니까요.

옷장(‘사자와 마녀와 옷장’)에 이어 기차역의 플랫폼(‘캐스피언 왕자’), 그리고 이번에는 벽에 걸린 그림을 통해 나니아로 들어가는 ‘시공간의 통로’는 우리 일상 속에 다른 세계와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암시로 읽히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현실의 물질세계가 눈에 보이지 않은 영적 세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굳이 종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경험하게 되는 사실 아니던가요.

새벽출정호를 타고 떠나는 이번 모험길에는 바다와 섬들이 주무대를 이룹니다. 에드먼드, 루시와 함께 그림 속 바다로 이끌려 들어간 사촌 유스터스는 리피치프가 “불평쟁이(complainer)”로 부를 만큼 늘 골 난 표정을 하고 매사에 툴툴거리거나 불평을 달고 사는 아이입니다. 이들이 캐스피언 왕과 함께, 오래 전 사라진 나니아의 일곱 영주를 찾아나서는 모험이 이 영화의 줄기를 이루는 이야기입니다.

영화관에서 새벽출정호의 일원으로 이들과 함께 2시간 여에 걸친 모험을 즐기다 보면 알게 되는 진실이 있습니다. 모험은 결국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이며, 모든 모험에는 위험과 시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 말이지요. 그 위험과 시험을 회피해서는 모험 그 자체도, 명예도 없을 거라는 사실 말이지요.

새벽출정호가 한발 한발 모험의 종착지로 다가갈수록 시험과 위험의 강도는 점점 커집니다. 시험은 공동체적이면서 개별적으로 다가옵니다. 사람은 저마다 약한 고리가 있게 마련이고 한 사람의 작은 약점도 새벽출정호에는 큰 구멍이 될 수 있어, 일쑤 공동체 전체를 침몰의 위기로 내몰지도 모를 일이지요. 시험은 자기 자신보다는 좀더 강하고 멋진 존재가 되려는 갈망을 품은 이들(피터를 지향하는 에드먼드, 아버지를 지향하는 캐스피언, 수잔의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루시), 아니면 자기 자신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관심과 선의를 보이지 않은 이에게(유스터스) 찾아옵니다.


‘어둠의 섬’은 우리 안에 있다

시험과 위험의 절정은 ‘어둠의 섬’입니다. 그 어둠의 섬은 마치 절대악의 상징인 양 도무지 그 내부를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곳이지요. 그것은 우리 바깥의 머나먼 세계가 아니라, 우리 내면에 도사린 세계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어둠의 섬에 가까워질수록, 유스터스가 용으로 변해버린 것처럼, 주인공들 자신도 본연의 실재가 아닌 어그러진 형상을 드러내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어둠은 두려워 회피하기보다 직면하거나 맞서 싸울 때에야 비로소 걷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치 유스터스가 용의 껍질을 벗고 인간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그랬듯, 어둠의 섬을 뚫고 지나는 과정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성장과 선한 변화를 위해서는 “좋은 고통(good pain)”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겠지요. “발에 박힌 가시를 뽑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결국 시원해지는” 그런 고통 말이지요.

당신은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책과 다른 매체이니 원작을 고지식하게 고수할 필요는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예전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출한 마이클 앱티드 감독은 톨킨 식으로 말하자면 “제2의 창조”를 한 셈이고, 저희 가족들은 그의 창작물을 꽤나 만족스럽게 즐겼습니다. 게닥 장면 곳곳에서 만나는 루이스식 촌철살인의 대사 또한 살갑게 다가왔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삶은 의미가 없지요.”
“어둠을 이기려면 자기 내면의 어둠을 먼저 이겨야 해.”
“너의 가치를 의심하는구나. 네 자신에게서 도망치면 안 돼.”
“잃은 것만 생각하다가 주어진 것을 잃어버렸어.”

잭, 끝으로 한 가지만 여쭙고 글을 맺을까 합니다. 혹시 ‘마지막 전투’는 영화로 나올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어려울까요? 그림자 나라를 사는, 특히 얼굴에 그림자 드리울 일 많은 한국 독자들의 평안을 빌어주시기 바라며, 이만 맺습니다. 언젠가 당신을 뵐 날이 오겠지요.

* <나니아 연대기 3: 새벽출정호의 항해>, 벤 반즈(캐스피언), 조지 헨리(루시), 스캔다 케인즈(에드먼드), 윌 폴터(유스터스) 주연. 마이클 앱티드 감독, 2010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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