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서 분쟁의 소식이 들려오고, 한반도에도 긴장의 먹구름이 자욱하지만, 목자이신 주님이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 전사이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농부이신 주님이 오늘도 우리 가슴에 선의 씨앗을 심어주십니다.


평화롭던 연평도 마을에 떨어진 폭탄은 우리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때같은 우리 젊은이들이 죽었습니다. 착하고 어질던 가장들도 죽었습니다. 촛불 하나씩을 밝히는 마음으로 그들의 이름을 호명합니다.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 김치백 님, 배복철 님. 예기치 않은 시간,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주님께서 품에 안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중경상을 입은 많은 이들의 몸과 마음이 속히 치유되기를 기원합니다. 대대로 생업을 일구어오던 땅이 공포의 땅으로 변해 졸지에 실향민이 되어버린 연평도 주민들에게도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자녀들을 군대에 보낸 이 땅의 수많은 부모들에게도 주님의 평강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는 것은 반인륜적인 폭거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적대행위입니다. 성경은 에덴 이후 인간의 역사가 형제간의 갈등과 반목의 역사임을 보여줍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였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서로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뱃속에서부터 다퉜습니다. 요셉과 형제들은 서로 반목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인 것은 갈등을 폭력으로 푸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갈등의 상황에서도 공존을 모색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 속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된 것을 없애셨다고 말합니다. 그분 안에서 새 사람이 될 때 우리는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분단의 땅, 인류의 모순이 집적된 땅 한반도의 운명을 슬퍼하다가 한 편의 시를 만납니다.


“만군의 하나님, 우리에게 돌아오십시오.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보살펴 주십시오. 주님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이 줄기와 주님께서 몸소 굳세게 키우신 햇가지를 보살펴 주십시오. 주님의 포도나무는 불타고 꺾이고 있습니다. 주님의 분노로 그들은 멸망해 갑니다. 주님의 오른쪽에 있는 사람, 주님께서 몸소 굳게 잡아 주신 인자 위에, 주님의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리하면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니,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십시오. 만군의 하나님,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우리가 구원을 받도록,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나타내어 주십시오”(시편 84:14~19).


이 시가 어떤 상황에서 나온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인과 그가 속한 공동체는 지금 상당히 큰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전쟁으로 삶의 터전은 무너졌고, 인심도 흉흉합니다. 아무리 소리쳐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연평도 주민들의 마음이 이러할 것 같습니다. 돌아가 불에 타고 무너진 집을 다시 일으켜 세울 엄두는 나질 않고, 앞으로 살아갈 방도는 더욱 막연합니다. 형편이 이런 데도 하늘은 여전히 청명하고, 새들도 무심하게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잠시 놀랐던 사람들은 별일이 아니라는 듯이 재빨리 이전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가장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 바로 이 순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 다가선 순간입니다.

이 시에서 하나님은 목자이며, 전사이며, 농부입니다.
여전히 앞길은 캄캄하고 희망의 불빛은 가물거려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리라는 확신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의식 속에는 출애굽사건에 대한 기억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애굽에 내리신 열 가지 재앙도 잘 알고 있었고, 넘실대는 홍해가 어떻게 갈라져 길을 냈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린 만나도, 반석에서 솟은 물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한결같은 사랑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확신이 있기에 시인은 하나님을 목자라고 부릅니다.

또 하나님은 자유를 찾아가는 그들의 고달픈 여정에 동행하시면서 그 백성의 편에 서서 싸우시는 전사이십니다. 지난날의 죄 때문에 하나님은 잠시 그들을 외면하고 계시지만,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어머니처럼 전사이신 하나님은 결국은 그 백성을 구하기 위해 달려올 것입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애굽 땅에 있던 포도나무를 뽑아다가 약속의 땅에 심으셨다고 합니다. 정성을 다해 심고 가꾸신 덕분에 산들이 포도나무 그늘에 덮이고, 울창한 백향목도 포도나무 가지로 덮일 정도였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 곧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국경도 확장되고 물질적인 풍요로움도 누렸습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힘과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포도원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잊고 말았던 것입니다. 망자존대(妄自尊大)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손을 거두자 포도원의 울타리는 무너졌고, 포도나무 가지는 잘려나갔고, 포도원에는 불이 났습니다. 결국 지나가는 사람마다 들어와 열매를 따먹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자기들이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되는 때입니다. 내 힘으로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파멸의 씨가 파종됩니다.

이런 현실을 목도한 시인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다면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망자존대하는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들,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구나 주님의 집인 이 세계를 가꾸고, 주님의 식구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경쟁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모두가 이기적이고 야수적으로 변해갈 때도,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세상은 여전히 살만한 곳임을 일깨우는 사람들, 선(善)의 희미한 가능성을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들, 성도들은 그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곳곳에서 분쟁의 소식이 들려오고, 한반도에도 긴장의 먹구름이 자욱하지만, 목자이신 주님이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 전사이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농부이신 주님이 오늘도 우리 가슴에 선의 씨앗을 심어주십니다. 평화의 세계에 한 달음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지금 울면서라도 평화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은 밝아질 것입니다.

김기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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