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동행 길목에서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할 진리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인생이 스스로 원하고 추구하는 즐거움은 결국 공허하고 의미가 없는 것뿐이라는 솔로몬의 고백을 우리 모두 좀 더 일찍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인간은 누구나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누리려는 욕구를 갖고 있으며, 이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며 추구해 온 가장 오래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기 있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는 소위 쾌락주의(hedonism)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느끼기를 우리가 어떤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고 누리기만 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역사상 그 누구보다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쾌락을 추구할 수 있었던 사람을 떠 올려 본다면 아마도 솔로몬 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엄청난 부를 가지고 쾌락을 추구하는 일에 완전히 자신을 맡겼다. 그는 부와 쾌락을 즐기면서 수년의 세월 보내어 보았다. 웃음과 쾌락으로 가득 찬 솔로몬의 궁정을 상상해 보자. 매일 밤마다 솔로몬의 왕궁에는 강물처럼 흐르는 술과 웃음, 아낌없는 연회가 베풀어지고 있었다. 솔로몬은 700명의 아내들과 300명의 첩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밀가루 90석(약 1만 4000명의 하루 식사용 빵을 만들 수 있는 밀가루), 살진 소 열 마리, 초장의 소 스물, 양 일백, 사슴, 노루, 암사슴, 살진 새들(닭과 오리 등)이 솔로몬 왕궁의 하루 메뉴였다. 추정하건대 이 정도의 메뉴는 하루 2만 명의 사람들을 족히 먹일 수 있는 분량이다. 솔로몬은 이러한 잔치를 매일 열면서 웃고 즐기며 살았다.

솔로몬은 또 다른 형태의 즐거움도 추구해 보았다. 그것은 취미생활을 통한 즐거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왕궁에서 술과 춤과 노래와 웃음으로 쾌락을 추구해 본 솔로몬은 거기에서도 진정한 만족을 누리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제는 집을 짓고 정원을 만들어 수목을 가꾸는 전원생활을 통해 만족을 얻으려고 노력해 보았다. 그는 자기가 기거할 집을 14년이나 걸려 지었다. 예루살렘으로 데려 온 많은 아내들을 위해서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 수많은 집을 지었다. 지금도 예루살렘 서남쪽에는 솔로몬의 연못이라는 엄청나게 큰 웅덩이가 있는데 이 연못은 솔로몬이 자신의 마음에 만족을 주기 위한 노력으로 만들었던 정원의 수목에 물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고 사가들은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은 또한 목장을 가지고 엄청난 가축 떼를 소유하기도 하였으며, 도처에 은금 보화를 축적하여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가져왔다. 남녀 악사와 가수들을 두고 처첩들과 함께 인생을 즐기려고 해 보았다. 솔로몬은 이 모든 것을 인생들이 마음에 두고 즐기는 기쁨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솔로몬이 궁극적으로 발견한 것이 무엇이었는가?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1)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전 2:10)라고 말할 정도로 모든 것을 다 시도해 보았다. 쾌락을 추구하는 생활, 여가를 즐기는 생활, 직장 생활, 권력과 명성을 얻는 생활, 먹고, 놀고, 자고, 즐기는 생활 등 자기가 해 보고 싶은 것들은 거의 문자 그대로 하나도 없이 다 해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 모든 생활에 대한 대가는 결국 순간적인 즐거움일 뿐 아무런 가치도 없더라는 진리를 그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인생의 모든 수고는 마치 촛불처럼 타 없어지고, 남는 것은 지치고 실망뿐이더라는 것이다. 그 후에는 아무것도 자신을 진정으로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더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의미가 없고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말하였다.

인생의 동행 길목에서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할 진리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인생이 스스로 원하고 추구하는 즐거움은 결국 공허하고 의미가 없는 것뿐이라는 솔로몬의 고백을 우리 모두 좀 더 일찍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인생 여정에 이렇게도 우리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하나님 나라의 전진을 가로막는 분열과 갈등을 조금은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해 본다.

즐거움과 기쁨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없이 그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찰나적인 쾌락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더 깊은 맛이 우러나는 차원 높고 영원한 즐거움은 결단코 되지 못할 것이다. 짧은 인생길을 걸어가는 동행 길목에서 우리 모두 진정한 즐거움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지혜롭게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김성수 목사(고신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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