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계절에 만난 소중한 이야기 하나

김 판사는 선고를 내리면서 자신의 마음을 담은 시 한편을 읽었다. 정호승의 시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였다. 그리고 썼다. “그 상처들이 나를 향기롭게 할 것이라고. 그리고 나의 법정에서 마주한 그녀를 위해 기도한다. 부디 그녀의 아픈 상처들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향기로운 삶으로 피어나기를….”


눈을 뜨고 보면 아름다운 뉴스들이 있다. 내게 지난 한 주간은 그런 아름다운 뉴스 몇 가지로 말미암아 따뜻한 시간들이었다.
그중 하나는 대전지법 김진선 판사라는 분이 최근 자신이 다룬 한 재판사건을 소회하며 법원 내부통신망에 한 편의 글을 올렸는데, 판사와 피고인에 앞서 인간으로서 느낀 연민의 정이 절절하여 많은 이들의 입에 회자된다는 뉴스였다.

이야기를 자세히 펼치면 이렇다. 김 판사는 지난여름 재판정에서 한 여성과 마주하였다. 두 차례나 아는 이들의 지갑을 절취하고 또 절취한 신분증을 이용해 대출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각종 서류를 위조한 여성이었다. 그녀가 50쪽에 달하는 장문의 반성문을 썼고, 이 글이 김 판사의 마음을 울렸다고 한다. 

반성문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 엄마가 가출한 뒤 조부모 손에 양육되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새엄마와 사는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 새엄마의 구박에 시달렸다. 아버지는 두 번째, 세 번째 새엄마를 들였고, 그녀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반항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취업하여 집을 떠났다. 그러다 건강이 나빠지자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결국 이런 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녀는 반성문에서 이렇게 구속돼 잘못된 길로 들어서려는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게 돼 다행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더욱 다행인 것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화해를 하게 되었으며, 아버지 역시 최선을 다해 피해자들과 합의를 이끌어내었다고 적었다.

김 판사는 선고를 내리면서 자신의 마음을 담은 시 한편을 읽었다. 정호승의 시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였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 상처 많은 꽃잎들이 / 가장 향기롭다.
김 판사는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들을 썼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여 눈물로 지새운 시간들,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어려운 생활들이 담긴 유년의 아픈 상처들, 그러면서 말했다.

“나도 상처 많은 풀잎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당신의 인생만 아픈 것은 아니라고, 슬픔 없는 사람은 없는 것이라고, 고통에는 뜻이 있는 거라고, 상처 많은 꽃잎들이 더 향기로운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은 것이다. … 나는 확신한다. 그 상처들이 나를 향기롭게 할 것이라고. 그리고 나의 법정에서 마주한 그녀를 위해 기도한다. 부디 그녀의 아픈 상처들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향기로운 삶으로 피어나기를….”

삶을 꿰뚫는 듯한 김 판사의 긍정과 감사가 눈부시다. 그것은 어쩌면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풍랑 많은 인생에서 결국 우리가 만나야 할 것은 감사의 언덕이며, 그것이 오늘 풍랑 많은 시간을 견뎌내는 까닭이기 때문이다.

카렌 암스트롱은 <신을 위한 변론>(The Case for God)에서 “종교는 본래 사람들이 ‘생각한’ 무엇이 아니라 ‘행한’ 무엇”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실천과 수행을 통하여 자신의 영혼을 갈고닦는 한편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할 줄 아는 방법을 일깨운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식 또한 그것인지 모른다.
추수감사절을 맞으며, 무엇보다 그렇게 소중한 감사의 이야기들을 수확하고 싶다.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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