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기독교영화제도 어쩌면 ‘우공’의 호기로 시작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현대 문화의 앞줄에 선 영화를 기독교 신앙으로 구속하여 세속사회와 소통하되 세속과 구별된 방식으로 하겠다는 바람은 누가 봐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임에 분명했으니까요. 그건, 어쩌면 ‘구별’을 시도하다 마이너리티의 운명으로 ‘구분’되어 시나브로 고립을 가져올 자충수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서울 “국제”기독교영화제와 우공이산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생각했습니다. 어리석어 보일지언정 뜻을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실행해 가면 어느덧 이루어진다는 고사(故事) 말이지요.
지난 10월 26일 막을 내린 제8회 서울기독교영화제(SCFF, Seoul Christianity Film Festival)도 어쩌면 ‘우공’의 호기로 시작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현대 문화의 앞줄에 선 영화를 기독교 신앙으로 구속하여 세속사회와 소통하되 세속과 구별된 방식으로 하겠다는 바람은 누가 봐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임에 분명했으니까요.

 

그건, 어쩌면 ‘구별’을 시도하다 마이너리티의 운명으로 ‘구분’되어 시나브로 고립을 가져올 자충수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규모나 성패를 떠나 8년째 이 영화제를 ‘짊어지고 온’ 여러 ‘우공’들의 그 순전한 사명감을 쉬이 재단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올해는 ‘영화를 통한 소통’이라는 영화제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3회 때부터 줄곧 영화제를 지켜온 조현기 수석프로그래머의 조심스런 평가입니다. 기실 이번 영화제는 올해 깐느영화제 심사위원대상작 <신과 인간>, 베를린국제영화제 에큐메니컬 수상작 <가와사키의 장미> 등 작품성이 검증된 영화를 통해 관객들의 높은 호응과 안팎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영화제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건 결국 영화 자체라는 평범한 진리가 그대로 확인되었다고나 할까요.

 

영화제가 제법 성장했고 안팎의 관심도 상당히 높아졌지만, “외형상 규모는 여전히 왜소하다. 전체 스태프가 고작 7명이라는 사실이 단적인 예다”라며 다소 가라앉던 그의 목소리는 “2년 뒤”를 말할 때 다시 달아오릅니다.
“2년 뒤인 10회째부터는 ‘국제’영화제로 한 단계 도약하고자 하는 비전을 갖고 있다. 물론 규모를 키우는 게 큰 과제일 테지만, 여기까지 온 것도 우리 힘으로 된 건 아니니까.”

 

계산하고 따져서 하려 들었다면 안 될 일이 적지 않았을 터입니다. 그러니 “2년 뒤”를 향한 꿈도, 길이 열리기에 걸음을 내딛기보단 걸음을 내딛고 보니 안개 사이로 길이 열리듯 펼쳐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국 이 꿈 또한 탈(脫) 비즈니스 마인드의 사업가(비즈니스 마인드로는 ‘독립영화’중에서도 하위에 속할 종교 영화를 상영해 줄 극장주가 있을지요)와, 꿈을 품은 영화쟁이들과 수많은 자원가들과 후원자들, 그리고 앞선 생각을 지닌 교회 리더들과 관객들의 열망이 한데 어우러져 ‘산을 옮기듯’ 코앞에 다가오지 않겠는지요.


# 할리우드와 한국의 간극

 

영화제 특별프로그램 중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랄프 윈터(Ralph Winter, 사진) 세미나는 기독 매체와 영화학도, 영화인들의 관심과 열기가 특히 뜨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UC버클리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브로드웨이백화점에서 한동안 고객 대상 홍보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지요. 그 일을 계기로 파라마운트에 들어가 결국 “계획에도 없던” 영화제작자가 되었다는군요.

 


여담이지만‘랄프 윈터’는 제게 선교 분야 전문가로 귀에 익은 이름이었는데 헐리우드 영화제작자, 그것도 <스타트렉> <X-맨> 시리즈 같은 흥행대작의 제작자라니, 이 뭔 일?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서야 선교 전문가 랄프 윈터(Ralph D. Winter)와는 다른 인물로, 두 ‘랄프’는 연배나 이력이 서로 판이한 사람이란 걸 이번에야 알게 되었지 뭡니까.
한때 “목회자를 꿈꾸었던” 그이지만, 영화관(觀)은 할리우드의 흥행 제작자다웠습니다.

“내 영화에서 선과 악을 그려내려는 뜻은 없다. 중요한 것은, 관객들에게 영화를 통한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하는 일이다.”
그는 “무엇이 기독교영화인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빙긋 웃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 질문은 ‘기독교 배관공이 누구인가’하는 질문과 같다. 수도 배관이 고장 나면 수리를 잘하는 배관공을 부르지, 그가 기독인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영화를 만든다. 관객에게 호소력 있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내겐 중요한 일이다. 아울러 기독교인인 내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스태프들을 존중하고 합당한 임금을 지불하며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할리우드 영화제작자에게는 넌센스였을지 몰라도, 영화 일을 하는 한국의 기독교인에게 ‘무엇이 기독교영화냐’는 질문이 중요한 화두인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 C. S. 루이스와 ‘오래된 미래’

 

10월 25일에 있은 SCFF 포럼 “한국 기독교영화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서 조현기 수석프로그래머(사진)는 “한국 기독교영화가 2009년 <소명>을 시작으로 극장 상영을 통해 일반 관객과 만날 기회가 늘어난 만큼, 이제는 다큐 영화 중심에서 벗어나 ‘탄탄한 이야기’가 바탕이 된 극영화 제작 여건을 조성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말은 “영화는 결국 좋은 스토리텔링의 역사”라고 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터뷰(<씨네 21> 764호)를 떠올렸고, 나니아의 C. S. 루이스에 가닿았습니다.

 

여러 분석서와는 달리,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를 신학적 체계를 담아 쓰지는 않았다는군요. 아이들이 자라서 기독교를 접하기까지, “아이의 상상력에 일종의 예비 세례를 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게 목적이었다는 거지요(콜린 듀리에즈, <루이스와 잭> 340쪽, 홍성사). 루이스를 빌려 말하자면, 이제 한국 기독교영화도 일반 관객의 “상상력에 일종의 예비 세례를 주는” 영화, 세속사회에 공감의 파장을 일으킬 ‘좋은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오래된 미래’처럼 여겨 붙좇을 일 아니겠는지요.

옥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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