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를 위한 대안경제 꿈꾸는 이혁배 교수

이혁배 교수는 대안적 경제모델들이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인간적’이란, 바로 지(知), 정(情), 의(義)를 고루 갖추는 것이다. 지성, 감성, 의지. 이중에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혁배 교수(숭실대)는 기독교윤리 중에서도 사회윤리, 그 안에서도 ‘경제윤리’를 가르친다. 그를 만나면 너도나도 정신없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살아가는 이 물질만능주의의 물결에 맞설 묘안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어 더욱 기대되었다.

사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대안경제’라는 말이 나오고 우후죽순처럼 사회적기업, 마이크로크레딧, 공정무역 같은 모델들이 생겨났다. 2년 전 아직은 이런 단어들이 익숙하지 않을 때, 이와 관련된 아카데미에 두 달간 참석했다. 대안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실천을 위한 모임이었다. 이 모임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20년 넘게 사회복지활동을 해온 어느 분의 말씀이다.

“마냥 좋은 일인 것 같아 너도 나도 뛰어들어서,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진행될 테지만 핵심적인 뿌리, 즉 윤리적 깊이 없이는 모래 위에 지은 집 같이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의욕만으로도 어렵고, 자본만으로도 어렵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할 때는 윤리적 기반, 그 중에서도 사회?경제적 윤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충고였다.

이 충고의 연장선에 이혁배 교수의 주장이 빛을 발한다. 대안경제를 위한 기독교인들의 윤리적 뿌리를 찾아 나서는 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독교가 지닌 윤리의 핵심은 사회적 약자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곧 이웃사랑이다. 그리고 이웃사랑은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solidarity)로 번역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기독교 윤리’라 쓰고 “이웃사랑”이라 읽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웃사랑도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으로 나눈다. 그리고 점점 더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사회윤리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군다나 사회제도가 잘못되면 개인의 윤리적 행동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이웃사랑의 사회적 실천은 더욱 중요하다. 이혁배 교수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한국교회와 NGO의 적극적인 연합을 제안했다.

“사회윤리를 위해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NGO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고치거나 법적인 청원도 해야 하고, 때로는 시위도 해야 하는데 개인이나 교회가 이런 일을 하기는 쉽지 않지요. 그러나 NGO를 매개로 하면,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습니다.”
한국의 교회가 NGO와 연계해 사회운동에 나선다? 선뜻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일일이 반응하다 보면 자칫 정치적으로 비춰질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의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명료했다.

“기독교인은 사회적인 약자들의 관점에서 사회를 봐야 해요. 그러나 우리는 탐욕 때문에 그들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욕심을 버리는 것을 추구하는 종교이지요. 야고보서가 강조하듯이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작은 자들의 입장을 메시지로 전해야 하고, 이러한 ‘복음’이 NGO와 결합될 때 사회적 변화까지 꾀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는 경제체제의 변혁도 필요하고 말했다. 사회적기업이나 마이크로크레딧 등이 그것이다.
“한국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한경쟁시대로 돌입한 오늘날의 삭막한 경제 현실을 극복하는 대안적 경제모델을 창출하는 거예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기 위해서지요. 요즘 사회적기업이나 마이크로크레딧 등 사회 일각에서 이런 논의가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도 아닌,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도 아닌 제3의 대안적 경제모델을 모색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사실 사회적기업은 정부의 보조가 끊기면 90% 이상이 운영이 어렵다. 가난한 이들에게 소액대출을 해주어 사업기반을 돕는 마이크로크레딧 역시 마찬가지다. 무하마드 유누스가 시작했던 방글라데시에서는 혁신적이었지만, 한국에서는 그 몇 십 배에 달하는 ‘소액’을 대출해주어도 창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혁배 교수는 대안적 경제모델들이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인간적’이란, 바로 지(知), 정(情), 의(義)를 고루 갖추는 것이다. 지성, 감성, 의지. 이중에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여기에 그가 말한 기독교윤리, 즉 이웃사랑이 온전히 수혈되어진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지성, 감정, 의지 중 감정은 충분하지만 지성과 의지는 경시되고 있어요. 지성과 의지는 이성적인 교육이나 도덕적인 훈련으로 쌓아가는 겁니다. 특히 이웃사랑은 의지와 관련된 것이라서 영성적인 것만 제공해서는 절대 해결될 수 없습니다. 지성과 감정이 있다고 해도, 의지에 따른 실천이 없으면 우리가 기독교인이라는 걸 증명할 길이 없는 것처럼요.”

이웃사랑이 훈련과 교육의 토대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 우리가 혹독한 시장경제의 틈바구니에서 살게 되면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혁배 교수의 목표는 더 많은 사회적 약자를 품는, 이웃사랑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그는 “한국교회가 사회적기업, 마이크로크레딧을 통해 ‘인간적인’ 경제활동을 전개하다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혁배 교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그리고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신학부에서 기독교 사회윤리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숭실대학교 베어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개혁과 통합의 사회윤리>, <현대 생태신학자의 신학과 윤리>(공저), <종교 근본주의와 종교분쟁>, <신자유주의 시대 경제윤리> 등이 있다.

이범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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