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블랙모어의 책 <밈>(meme)이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밈’이란 <만들어진 신>을 쓴 리처드 도킨스가 처음 제시한 개념입니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1976)란 책에서 인간의 진화를 두 가지로 구분하면서, 하나는 유전자를 통한 생물학적 진화이고, 다른 하나가 모방을 통한 문화적 진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문화의 진화를 이끈 새로운 복제자를 ‘밈’(meme)이라고 칭했습니다. 밈은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미메메’(mimeme)를 생물학적 유전자를 의미하는 ‘진’(gene)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변형시킨 말이지요.

수전 블랙모어는 천하의 ‘테레사 수녀’조차도 종교라는 문화를 효과적으로 복제하는 데 기여한 존재로 전락시킵니다. 그녀는 애초에 자유의지는 없다, 선언하고 인간이란 그저 ‘밈’을 만들고 복제하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거침없이 말합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그런 불편함 때문인지 울렁증이 심했습니다. 물과 기름처럼 한 데 섞이지 못한 액체들이 울렁거리는 듯 했습니다.

그 느낌을 피하고 싶어 영화관을 찾았는지 모릅니다.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 수단의 ‘톤즈’란 마을에서 ‘검은 상처’를 치료하며 그들에게 희망에 대하여 가르치던 한 가톨릭 사제의 이야기입니다. ‘수단의 슈바이처’로도 불리는 그는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더욱 가난하게 살아가는 검은 한센인들과도 친구처럼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가난한 아이들의 가난한 학교 교실을 더 지어주기 위해 기금을 모금하고자 조국에 왔다가 우연히 말기암이란 사실을 발견하였고, 암과 싸우다 결국 가야 할 땅에 돌아가지 못한 채 마흔여덟의 나이로 올해 1월 숨을 거둔 분입니다.

그의 투병모습을 비디오로 보면서 눈물 흘리지 않기로 유명한 톤즈의 ‘용사’들이 엉엉 웁니다. “신부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였다”고 거리낌 없이 말합니다. 웃고 있는 이태석 신부의 영정에 입을 맞출 때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제 눈에도 눈물이 흐릅니다. 영화관을 나섰을 때 내 안에서 그렇게 울렁거리던 증세는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다간 마흔여덟의 한 남자와, 그를 그렇게 살게 한 그 남자의 주인이 아름다웠습니다. 평화와 안식은 거기 있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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