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을 바라보는 ‘노총각’ 셋째형에게

결혼이 우리의 인생에서 행복의 필수조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홀로, 행복을 발견하고 누리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한, 다른 존재, 다른 무엇에 기대 행복을 얻고자 하는 의존적 심리로는 누구인들, 무엇인들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셋째형, 조선업계가 많이 어렵다는데, 잘 지내시는지요? 명절에나 겨우 얼굴 보는 사이에 편지를 띄우려니 적이 쑥스럽네요. 지난여름의 한증막 더위가 가시고 서늘한 바람 부는 요즘, 일하기는 한결 수월하겠지요.
막내인 제가 올해 마흔셋이니, 셋째형이 어느덧 마흔 중반을 넘어섰군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군 제대 후 어언 10여 년을 형은 선원으로 일하셨지요. 한 달에 한 번 귀항하는 이틀을 빼곤 바다가 일터였던 그 30대에 연애를 했을까 상상하기란 쉽지 않군요. 포천에서 포병으로 복무한 셋째형의 군 시절 빼곤, 20대를 어찌 보내셨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군요. 그 시기에는 형이 연애를 하셨을지도 모르지요.

 

중요한 건 셋째형이 여전히 싱글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니, ‘싱글’은 왠지 도회지의 남녀 직장인에게나 어울릴 법한 말이지요. 지방 중소도시의 조선소 노동자인 형에게는 ‘노총각’을 넘어 ‘퇴물총각’이라는 ‘레떼르’가 붙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러니 아무리 영화라쳐도, <시라노 연애조작단>에 나오는 연애와 사랑 이야기는 셋째형에겐 다른 행성의 이야기일 거라는 거,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사랑도 연출할 수 있다?

이 달콤발랄한 영화를 보면서 저는 하필 저 지방 해안도시의 ‘퇴물총각’인 셋째형을 떠올렸을까요? 돌아가신 어머니의 안타까움이 느껴졌던 걸까요.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스토리는 여자 앞에만 서면 초고속으로 난장이가 되어버리는 쑥맥인 남자와, 누구나 첫눈에 사랑에 빠질 듯한 사랑스런 여자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금융업계에서 꽤 잘나가는 펀드매니저 상용은 같은 교회를 다니는 희중을 예전부터 좋아했지만, 말 한 마디 붙이지 못하고 속만 끓이는 ‘연애 쑥맥’입니다. 영화에는 이런 젊은 남녀의 연애지사를 중간에서 대행해주고 그 연애가 성공하도록 모든 상황과 사건, 만남의 시작에서 키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연출하고 꾸며내는 연애 대행사가 나옵니다.

시라노 에이전시. 19세기 프랑스 시극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에서 다른 사람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준 인물 시라노 베르주라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연애 대행업체의 이름입니다. 전직 연극 단원으로 구성된 시라노 에이전시는 첩보기관 뺨치는 첨단 장비를 갖추고, 의뢰인들의 첫 만남에서부터 키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과 상황을 연출해주고 대사까지 일일이 지시합니다. 그러니 여자 앞에 서면, 특히나 좋아하는 여자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오그라드는 상용조차도 멋드러진 말을 줄줄 읊어댈 지경이 되는 거지요.

시라노 에이전시가 진작 나왔다면, 잿빛 가득한 제 20대도 조금은 보랏빛으로 꾸며지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들의 ‘작업’ 수준은 보통이 아닙니다. 시라노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아 상용은 희중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갑니다. 그들 사이에 예기치 않은 걸림돌이 등장하기도 하고 모든 게 파투 날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상용의 진정어린 마음은 변함없이 희중을 향합니다.

시라노 에이전시의 미션은 성공을 거두었을까요? 코미디멜로를 표방한 영화이니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 미리 발설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연애 쑥맥 상용은 시라노의 각본과 연출대로만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진정으로 간절히 바라고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면, 아무리 쑥맥일지라도 한 줌의 용기는 발휘할 수 있는 법이지요.
그래서였을까요. 그간의 만남 과정을 회상하는 희중이 의문스런 장면들을 떠올리지만, 중요한 건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상용의 거짓 없는 용기와 진정어린 마음이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 마음은 연출하거나 조작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자기 앞의 생’을 살게 하는 것

올해 설날이었던가요. 형에게 물었지요. “만나는 사람 없어요? 결혼은 안 하실 생각이세요?”뜬금없는 막내의 질문에 형이 그랬지요. “이제 뭐 결혼이고 뭐고 생각 자체가 없다. 그냥 이래 혼자 살아도 별 나쁘지 않겠다 싶다.”
그 말 듣고 마음이 놓이기보다 쓸쓸한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지요. 셋째형 장가드는 걸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신 어머니는 지금도 걱정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고향 동네의 나이든 노총각들이 중국 또는 동남아 처자들과 가정을 꾸리고 살아간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라도 베트남이나 필리핀으로 날아갈까 하는 생각을 많이도 했지요. 그런데 처자를 데려오는 데만 천만 원이 넘게 든다는 얘길 듣고 그저 생각을 접고 말았지요. 요샌, 그거 대출을 해서라도 다녀오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셋째형, 객지에서 홀로 지내기가 외롭지는 않은지요? 기독교 성인인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도 젊은 시절에 명예[권력], 돈[탐욕], 결혼[정욕] 세 가지를 행복의 조건으로 믿고 추구한 적이 있었지요. 그는 자기 주변의 유력자들을 통해 관직에 쉽게 오를 수 있을 테고, 그리 되면 재력가의 딸과 결혼할 수 있을 테니 나머지 조건은 저절로 따로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우구스티누스가 회심하여 참된 기독인이 되기 전의 일이긴 합니다.

형, 결혼이 우리의 인생에서 행복의 필수조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홀로, 행복을 발견하고 누리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한, 다른 존재, 다른 무엇에 기대 행복을 얻고자 하는 의존적 심리로는 누구인들, 무엇인들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입니다. 형이 혼자서도 행복하셨음 좋겠습니다. 세상이 형을 무엇으로 규정하든, 형은 형 자신으로서 하루하루 의미 있고 복된 삶을 살아가셨음 좋겠습니다. 물론 형에게도 연애할 사람이 나타나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큐피드가 이제 형에게도 자기 할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읽은 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 고아처럼 자라는 소년 모모에게 하밀 할아버지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인간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이야말로 우리 앞의 냉담한 생을 살아가는 유일한 길임을 모모는 깨닫게 되지요.
이 가을, 셋째형에게도 더불어 생을 함께할 그 사람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찹니다. 건강 챙기시기 바라며, 이만 맺습니다. 


옥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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