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마을 어느 교회의 작은 기적

타국의, 얼굴도 모르는 아이를 위해 헌금을 하자고 말을 꺼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사람은 순종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목사님은 정말 조심스럽게 수요일 저녁예배를 마치고 광고를 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산골에서 연세 드신 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교회는 그리 넉넉한 교회가 아닙니다.
아침 여섯 시부터 밤이 늦도록 땡볕에 나가 고추를 따느라 눈이 짓무르고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고된 일을 하는 성도님들이 대부분인 정말 작은 시골 교회지요. 하지만 돈은 없어도 하고 싶은 일들은 너무 많습니다. 그걸 마치 시험이라도 하듯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으로부터 이메일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제네린은 열여섯 살의 여자 아이입니다. 하지만 제네린은 심장병으로 쓰러져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수술비가 너무 많아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수술비는 필리핀 돈으로 10만 페소입니다. 우리 돈으로 280만 원이나 되는 큰돈이 들어가니 어려운 형편에서는 엄두를 낼 수가 없지요. 그저 기도하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병원에다 제네린의 가정이 너무 가난해서 병원을 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를 내고 또 도와달라고 호소도 하여 수술비를 140만 원까지 깎았습니다. 그러니 대덕교회가 제네린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수술비를 헌금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여름 행사를 치르면서 없는 재정을 쪼개 쓰느라 버거웠습니다. 게다가 우리 교회 성도님들 중에도 지금 당장 수술비가 없어 어려움을 호소해야 하는 형편이니 우리 일만으로도 정신이 하나도 없는 판이지요.
그런데 타국의, 얼굴도 모르는 아이를 위해 헌금을 하자고 말을 꺼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우리 사람들의 생각만으로 가로막을 수 없지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사람은 순종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목사님은 정말 조심스럽게 수요일 저녁예배를 마치고 광고를 하였고, 주일 낮 예배시간부터 헌금이 모여지기 시작했습니다.

‘턱도 없이 모자랄 텐데 나머지는 우리가 채워야 하나? 아니면 이게 전부라고 모인 헌금만 보내드려야 하나? 아, 하나님이 채워주셔야 하는데….’
이런 걱정을 하며 우리 가족도 얼마의 헌금을 드리고 수요일까지 기다렸습니다.
정말이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놀랍고 놀라웠습니다. 이 작은 교회에서 일주일 만에 자그마치 155만 3000원의 헌금이 모여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헌금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요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아침 일찍 선교사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선교사님, 수술비가 넉넉히 준비되었으니 한시라도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세요.”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하나님만 믿고 병원 예약을 해서 데려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선교사님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느라 들떴습니다. 

이 귀한 헌금이 모여지기까지 성도님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대가들을 치르셨습니다.
“고추 따러 댕기는 품삯이 두 가지래요. 밥 하구 참을 주면 4만 원이구, 내 밥을 가져가서 먹으면 5만 원인데, 어짜피 하루 일하는 거 필리핀 후원금도 내고 그럴려고 5만 원짜리 일을 하느라 허기져서 아주 죽을 뻔했어유.”
“왜 아녀. 요새는 가만이 있어두 실컷 두둘겨 맞은 사람처럼 몸땡이가 안 아픈 데가 읍서유. 그래두 기를 쓰구 일 허는 거래유.”
“아, 모기는 왜 그렇게 깨무는지 아주 아침부터 하루 죙일 나를 잡어먹을라구 뎀벼유.”

어떤 성도님은 오래 모아둔 옥합을 깨주셨습니다.
헌금제목도 얼마나 다양한지 기부금, 후원금, 선교비…. 그렇지만 마음은 한 가지 제네린의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다른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이 있어 이 작은 교회에서도 한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착한 성도님들의 간절함이 모아진다면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는 소원들까지 이뤄질 것이란 확신도 생겼습니다.


글=민형자
민형자 씨는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곡3리에 위치한 대덕교회에서 남편 김춘기 목사와 함께 노인들이 대부분인 대덕골 마을사람들을 섬기며 따뜻한 목회를 해오고 있다. ‘대덕골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주보에 실린 글을 모은 <포도주와 빨간 사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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