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다큐멘터리 '잊혀진 가방'

“평소 공석에서도 ‘교회는 제법 수지맞는 돈벌이지’라며 비아냥대곤 했죠. 그런데 독실한 그리스도인인 아내를 만나고, 큰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 교회를 다니게 됐어요. 신앙의 힘으로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지요. 그 뒤로 신앙인의 삶에 대해 고민했어요. 이 여행에 동참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믿음의 선배들, 훌륭한 신앙인들로 존경받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서였죠. 그들을 보면 제가 어떤 신앙인으로 살아야하는지 알 수 있겠다는 심정이었어요.”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 많은 사람들이 더위의 맹폭을 피해 산으로 바다로 휴양지로 떠났다.
여행, 특히 휴가철 여행은 여가생활을 즐기거나 휴양하는 행위라는 것이 대중적인 인식이지만, 근래에는 여행 패러다임도 다양해지는 추세이다. 해외여행도 하고 좋은 일도 하자며 국내외봉사활동이나 비전트립, 단기선교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오중 씨와 현우 씨도 그랬다. 이들은 한 선교단체의 부탁으로 ‘여름휴가’라는 절호의 시간을 반납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들이 가야할 곳이 이상했다. ‘봉사지’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영국이었다. 여행일정도 수상쩍었다. 전통 있는 한 선교단체에서 낡은 가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오는 것이었다.

어쨌든 오중 씨와 현우 씨는 영국의 한 선교단체를 찾아갔다. 관계자는 이들을 지하창고로 안내한 뒤 골동품처럼 보이는 낡은 철가방을 꺼냈다. 여기까지가 이들에게 계획된 여행일정이었지만, 가방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오중 씨와 현우 씨는 그냥 돌아갈 수가 없었다. 선교사들이 선교지로 떠나기 전에 맡겨놨다는 가방, 수 십 년째 찾아가지 않은 가방의 주인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곧 끝나가는 여름휴가기간, 금세라도 생길 것만 같은 스케줄이 걱정됐다. 요즘처럼 불황에 생기는 스케줄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격인데, 이를 거부하면 당분간 연예계에서 이들의 모습을 보기는 힘든 상황이었던 것. 교회 생활 14년차의 권 집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교회 다닌 지 3년 남짓한 현우 씨는, 특히 현우 씨는 임신 중인 아내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런데 불현듯 떠나기 전 아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교회 다닌 지도 얼마 안됐는데 이렇게 교회봉사 기회를 주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아. 잘 다녀오고 은혜 많이 받고 와요. 예배도 열심히 드려요.”
현우 씨는 마음을 단단히 옭아맸다. 오중 씨와 “한번 해보자”며 서로를 격려하고 가방의 주인공을 찾을 결심을 했다. 물론 일정에도 없는 여행경비는 본인들이 부담한 채였다.

“교회를 극도로 싫어했어요. 평소 공석에서도 ‘교회는 제법 수지맞는 돈벌이지’라며 비아냥대곤 했죠. 그런데 독실한 그리스도인인 아내를 만나고, 큰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 교회를 다니게 됐어요. 신앙의 힘으로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지요. 그 뒤로 신앙인의 삶에 대해 고민했어요. 이 여행에 동참했던 이유는 믿음의 선배들, 훌륭한 신앙인들로 존경받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서였죠. 그들을 보면 제가 어떤 신앙인으로 살아야하는지 알 수 있겠다는 심정이었어요.”

가방의 주인을 찾는 여정은 어느새 머나먼 아프리카로 이어졌다.
내전으로 인한 가난과 기아, 질병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콩고와 기니비사우 등의 지역에서 만난 선교사들은 크고 작은 아픔을 갖고 있었지만 이 땅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과거 콩고를 사랑하여 갓 태어난 아기를 포함한 가족들을 데리고 콩고로 온 선교사가 있었는데, 선교사는 내전 중에 콩고인들에게 죽고 아내는 6개월간 납치, 감금, 성폭행 등을 당했어요.


그런데 선교사의 부인은 풀려난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서 콩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했어요. 신생아였던 아기는 커서 본국에서 공부를 하고 다시 콩고 선교사로 향했다더군요.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 그토록 콩고를 사랑했을까요.”

오중 씨와 현우 씨는 버니아 지역으로 길을 향했다. 그곳에 있는 유일한 병원인 <복음선교센터>에는 필립·낸시우드 선교사 부부가 있었다. 우드 선교사 부부는 한 손에는 메스와 청진기를, 다른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30년 넘게 이곳에서 사역했다.

오중 씨와 현우 씨가 보기에 우드 부부의 삶은 불편해보였다. 하루 내내 태양열로 충전한 전기를 밤에 사용하며 흐릿한 전등불에 의지하여 의료일지를 정리하고 살림을 했다. 하지만 우드 부부에겐 그늘이 보이지 않았다. 부부의 얼굴에는 웃음으로 생긴 주름만 보일 뿐이었다.

우드 부부는 우연한 계기로 여름휴가차 방문한 콩고였는데, 순수한 눈망울을 가진 콩고 사람들에 매료되어 그 후로 몇 번의 방문 끝에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더랬다.
“우연한 여행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지요. 내가 이곳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낸시 우드 선교사)

오중 씨와 현우 씨는 우드 선교사 부부의 이야기에 자신들을 돌아보게 됐다. 우리도 우연히 이곳까지 오게 됐는데, 반드시 하나님이 뜻하신 무엇을 경험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었다.
또 다른 지역 기니비사우에는 80세가 넘은 여선교사가 원주민 언어로 만든 문자로 성경을 제작하여 보급하고 있었다.


미스 스코틀랜드 출신인 여선교사의 이름은 아이사 아더로 결혼도 하지 않은 채 56년째 사역하고 있다. 15년 전부터는 우리나라의 이인응 선교사 부부가 아이사 선교사와 함께 사역 중이다. 이 선교사 부부는 선교지에서 딸을 잃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선교사역에 불을 지핀 계기가 됐다.

“딸이 죽었을 때 하나님을 원망했어요. 전도유망한 화가의 직업을 내려놓고 부르심에 순종했는데, 딸을 데려가셨다면서요. 선교고 뭐고 다 포기하려는데 딸이 크레파스로 그린 원주민 그림이 보였어요. 평소 딸은 ‘아빠는 그림도 잘 그리면서 왜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라며 투덜대곤 했어요. 그런 딸이 남긴 그림은 마치 딸을 대신해서 이들을 그려달라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았지요.”

그때부터 이 선교사는 크레파스로 원주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며 원주민들과의 교감도 깊어졌다. 또 이들의 삶을 그림에 담아내어 한국에 알리고 많은 기도와 물질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 오중 씨와 현우 씨는 자신들이 만난 선교사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들은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삶을 통해 원주민들의 마음과 삶에 열매를 맺는 것을 보는 기쁨으로 사역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의 작은 재주라도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목격할 때 얻는 희열감, 하지만 단지 이것 때문이라면 2% 부족하다.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머물러 있는 곳을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그 사랑이 오래전, 자신에게 주신 그 사랑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오중 씨와 현우 씨는 여행기간 내내 가졌던 의문을 해소했다.

“선교사님들은 복음에 빚진 자였어요. 주님이 자신에게 베푸신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한 순간, 매 상황마다 주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한 기회를 엿보고 있었어요. 곧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씀의 실천이었죠.


여름 휴가지에서 소명을 발견했던 우드 선교사 부부처럼 우리도 이번 여행을 계기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향후 주님이 주신 자신들의 재능을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오중 씨와 현우 씨의 발걸음은 하나의 이야기와 노래가 되어 전해질 것 같다.


난 지극히 작은 자
죄인 중의 괴수
무익한 날 부르셔서

간절한 기대와 소망
부끄럽지 않게
십자가 전케 하셨네

어디든지 가리라
주 위해 서라면
나는 전하리 그 십자가

내 몸에 벤 십자가
그 보혈의 향기
온 세상 채울 때까지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사나 죽으나 난 주의 것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의 소망
내 안에 주만 사시는 것


▶영화 <잊혀진 가방>은 서울극장, 허리우드클래식, 광화문 시네마루, 돈암동 아리랑시네센터(이상 서울), 영화공간 주안(인천), 아트씨어터씨엔씨(부산)에서 상영 중이다.
(영화정보 및 관람문의= 070-8622-3088, www.theforgottenbag.com)
※기사에 등장하는 아이사 아더 선교사는 8월 초에 현지에서 소천 했습니다.

편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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