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리학자 최영준 교수는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춘천시 홍천강변 오지에 허름한 집 한 채를 마련하여 주중에는 서울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말과 방학에는 시골에서 직접 땀 흘려 농사를 지으며 자연 속에 묻혀 지냈습니다.

매주 시골을 오가는 차 안에서 나눈 아내와의 대화는 지금 생각해도 행복이었습니다.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오늘 아내와 나는 앞으로 남과 다투지 말고 지나치게 부를 축적하는 데 집착하지 말자고 했다. 또 내가 가진 것은 현명하게 지키고 부당하게 내 것을 빼앗으려는 자에게는 단호하게 지키되, 도움을 구하는 선한 이들에게는 망설임 없이 주자고 다짐하였다.”

오순도순 살아가는 가족의 일상도 흐뭇합니다.
“나는 고추 모를 심을 구멍을 파고 아내는 고추 모를 구멍에 넣고 아들들은 물을 부은 후 북을 주었다. 우리 가족의 정성으로 금년에는 120주의 고추들이 건강하게 잘 자랄 것이다.”
행복한 스승을 둔 제자들도 행복했습니다. 결혼 주례를 맡으면 그는 농사에 대한 철학을 얘기하며 주례사를 했습니다.

“만일 부부가 굳은 땅과 그 위에 고인 물처럼 화합하지 못하면 결코 튼실한 작물을 키울 수 없으며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부디 두 분은 부드러운 토양을 적시는 가랑비의 의미가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는 작은 진리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최 교수에게 처음 농사를 짓던 10년은 농사의 기본기를 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도시인의 세속적 경제관념을 버리고, 인심(人心)과 지심(地心)을 우선 헤아릴 줄 아는 참다운 시골 촌부가 되기까지 걸린 인내의 시간이었지요. 무엇보다 몸을 낮추어 배우면서 겸손을 몸에 익혔습니다.

 그래서 섣불리 귀농을 준비하려는 이들에게는 “도시생활을 하던 사람이 농토를 소유하고자 한다면 우선 땅을 사랑해야 하고, 작물을 가꿀 체력이 있어야 하며, 누구에게나 농사일을 배울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작물의 싹이 터서 자라는 과정을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인내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농촌에 체류하는 동안에는 TV시청이나 요란한 음율 등 도시적인 오락 없이도 무료하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조언합니다.

때로는 ‘학자가 연구하지 않고 어찌 땅이나 파는 천한 일을 하느냐’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지만 농사일이야말로 가장 좋은 수신(修身)의 길이라고 그는 고백합니다. 퇴계(退溪)와 반계(磻溪) 역시 농사를 지었고, 옛 선비들은 체면치레를 하느라 굶주리는 자를 진정한 선비로 여기지 않았음을 지적해 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참 농군의 길을 살아내신 일가 김용기 장로님을 떠올립니다. 정직을 말하고, 노동을 말하며, 환경의 가치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장로님은 여전히 몸으로 살아낼 것을 가르칩니다. 일가의 이 귀한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매년 일가상 수상자들이 선정되어 왔습니다. 올해는 제주도 감귤 농사에 평생을 바친 김찬오 씨가 농업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그 뿌리 깊은 농군의 삶에 박수를 보냅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