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스토리3>
친구를 뜻하는 ‘컴패니언’(companion)이라는 영어 단어가 있단다. ‘빵 한 조각을 함께 나눠 먹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빵 한 쪽만 있어도 같이 나눠 먹는 사람, 그게 친구란다. 그런 친구가 의진이에게도 있니? 의진이는 다른 누구에게 그런 친구가 되고 있니? <토이 스토리 3>은 아빠에게도 그런 물음을 던지는 영화였어.
“친구가 없으니까 외로움이지. 그러니까 외로워서 죽은 거야.”
어여쁜 우리 딸 의진아. 네가 네 살쯤 되었을 거야. 그때 키우던 제브라 한 마리가 죽고 나서, 곧이어 다른 제브라가 죽자 기어이 너는 울음을 터뜨렸다. 몸이 얼룩말(zebra)처럼 까만 줄무늬가 선명한 물고기였지. 그래서 이름도 제브라였고. 한 마리는 외로울 거 같아서 둘을 샀지. 자그마한 둥근 어항 속을 까만 줄무늬를 뽐내며 헤엄치던 제브라 두 마리가 아직도 아빠 눈에는 어른거려.의진이가 붙여준 이름이 아롱이, 다롱이였단다. 몇 달이 지났을까. 한 마리가 먼저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머지도 곧 죽었어. 울고 있는 너를 달래려 아빠는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단다.
“먼젓번에 아롱이는 약해서 죽었나봐. 근데 다롱이는 왜 죽었을까? 외로워서 죽었나…?”
“응, 외로워서 죽었나봐?”
“근데 의진, 외로움이 뭔지 알아요?”외롭다는 게 뭔 말인지나 알고 저러나 싶어 물었지. 눈물을 닦으며 너는 띄엄띄엄 대답했지.
“으응-, 외로움은-, 친구가 없는 게 외로움이지.”
네 살 배기의 대답에서 한 수 크게 배운 그날을 아빤 생생히 기억해. 어느덧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주중이고 주말이고 친구들과 노는 게 재밌어 죽겠다는 너를 보면 그때가 생각나는구나.
토이 스토리, 친구 스토리
사랑하는 딸 의진. 최근에 본 <토이스토리3>을 너는 몹시도 재미있어 했지. 앤디 ‘오빠’가 너무 잘생겨서 좋아했고, 버즈가 스페인어로 떠들며 정열적인 춤을 추는 장면을 흥겨워했어. (네게도 있는 ‘절친’ 토이 중 하나인) 바비가 남자 친구를 만나서 닭살스런 애정 표현하는 얘길 할 때는 진짜 몸에 닭살 돋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서, 지금도 웃음이 난다.
우디편이 불구덩이 떨어질 위기에 처한 장면도 생생히 재연하는 얘기를 들으며, 아빠도 <토이스토리>로 다시 빠져 들어갔어. 딸은 신이 나서 주특기인 ‘3배속 수다’로 영화 한 편을 다시 보여주었고, 덕분에 아빠는 토이들의 스토리를 더 생생히 기억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영화는 대학생으로 성장한 앤디와 남겨지는 토이들의 헤어짐을 다루고 있어. 다락방 행이 결정된 토이들은 실수로 어린이집으로 보내지는데, 새로운 환경은 그들에게 새 주인을 만날 기회이면서 앞날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위기였지. 그곳에는 곰돌이 랏소 패거리가 장난감계를 장악하고 있었어. 랏소 패거리의 무력에 의해 갇혀 지내다시피하는 토이들은 탈출을 시도하다 발각되어 쓰레기 소각장으로 가게 되지.
마침내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그리운 옛 주인 앤디 곁으로 돌아가지만, 우디는 이젠 헤어질 때가 되었단 걸 확실히 알게 되고 결국 앤디와의 작별을 받아들여. 그리고 헤어짐은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져, 토이들은 따뜻한 어린 새 주인 보니의 친구가 된단다.
“고마워, 친구들!”
토이들을 떠나보내는 대신 오래 남을 추억을 얻은 앤디의 마지막 작별 인사는 따뜻한 감사로 가득했어. 새로운 토이들을 한가득 선물 받은 어린 보니는 환희에 찬 환호성을 지르지. “엄마,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요!”
멀어져 가는 앤디의 꽁무니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우디는 말했지.
“또 보자, 친구!”
‘빵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있는가
사랑하는 딸아, 토이들이 쓰레기 소각장의 불구덩이 앞에서 서로 손을 맞잡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단다. 최후의 순간을 함께 손 맞잡고 받아들일 만큼 그들은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였나봐. 토이들과 함께 소각장에 떨어질 뻔한 딸기향 나는 보라색 곰돌이 랏소에게는 친구는 없고 부하만 있지(딸기향+보라색 털+곰인형=악당이라니, 상상이나 되니? 곰돌이 푸우나 테디베어가 봤으면 무지 충격이었겠다 그지?^^) 그 재밌는 캐릭터 랏소를 보면서도 아빠는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가더라.친구끼리는 다투기도 하고 삐져서 말도 안 할 때도 있지만 명령하지는 않잖아. 대화하고 의논하고 설득하는 게 친구잖아. 그런데 랏소는 윽박지르고 겁주고 명령을 내리지. 랏소 앞에서 남자 바비도, 원숭이도, 전화기도 모두 벌벌 떨지만 아무도 친구는 아니었어. 무력(강제)과 위협(두려움)을 사용할수록 진심으로 따르는 이들은 안 남게 되는 거지. 아빠 눈에는 랏소가 경찰이나 검찰의 힘을 자주 부려 쓰는 대통령 같아 보이더라. 우리나라 역사에도 랏소 같은 대통령이 있었거든. 이런, 미안. 이야기가 조금 다른 데로 흘렀지?
앤디가 토이들을 이웃집 아이에게 선물하는 장면도 인상 깊었어. 앤디는 토이들을 하나씩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햄, 포테이토 부부, 외계인 삼형제, 공룡 렉스, 슬링키 독…. 앤디처럼 누군가의 특징과 장점, 좋은 점을 잘 알고 있는 게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어. 맨마지막에 우디가 나오자, 우디는 자기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친구라고 소개하잖아? 해서 아빠는 누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친구인가 하고 스스로 물어보았어.
내게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 친구가 있을까, 하고 묻기도 했지. 이처럼 친구는 얼마나 의미 있느냐로 결정되어야지 얼마나 쓸모 있느냐로 결정되진 않는단다. 내게 얼마나 쓸모 있느냐로 사람을 사귀는 건 나의 이익을 위해 사람을 고르는 거지, 친구를 사귈 수는 없어.친구를 뜻하는 ‘컴패니언’(companion)이라는 영어 단어가 있단다. ‘빵 한 조각을 함께 나눠 먹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빵 한 쪽만 있어도 같이 나눠 먹는 사람, 그게 친구란다. 그런 친구가 의진이에게도 있니? 의진이는 다른 누구에게 그런 친구가 되고 있니? <토이스토리3>은 아빠에게도 그런 물음을 던지는 영화였어.
사랑하는 딸아, 아빠 생각엔 사람은 저마다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 더불어 살아가도록 지음받은 존재라고 봐. 그래서일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조차 혼자, 외롭게 죽는 게 싫어서 함께, 덜 외롭게 죽으려고 자살동호회 같은 걸 만들기도 하는 걸 보면 말야.
친구가 없는 게 외로움이라는 걸 아빠에게 가르쳐 준 내 딸아.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 친구로 살아가면 좋겠어. 외로움 겪지 않게. 그리고 지금, 우리 곁에 친구가 필요한 이에게 친구로 다가가면 좋겠어. 세상의 외로움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게.
옥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