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인가 하면서, ‘선한 사마리아인’을 이야기한 말씀을 가슴 저리도록 묵상하게 된 일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오랜 예수쟁이의 타성에 젖은 생활로 말씀을 건성으로, 의무감이나 형식적으로 읽곤 해서 말씀이 언제나 달고 오묘하지는 않았던 게 저의 진실한 고백입니다.


이 일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저의 그 특별한 경험과 그때의 다짐이 잊혀지고 스러지고 말 것 같아 이렇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기록해 두려 합니다. 아름다운 동행의 과제를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저의 일상은 어려운 경영에 치여 마음속에는 늘 인쇄비와 여러가지 밀린 운영비 부담에 즐겁지 않았고, 어떻게든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한 ‘아이디어’ 찾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곤고한 날들이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특별히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지하철역 통로에 쓰러진 사건이 생긴 것입니다.


6월16일이었습니다. 100세 되신 방지일 목사님을 뵈옵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나가 도저히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어 지하철역 계단에 갑자기 주저앉은 것입니다. 막 퇴근길이 된 때라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이 계단에 엎어져 있는 제가 그 순간,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사마리아인이라고 하셨던 그 말씀을 새삼스레 체험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에 찐하게 와 닿지 않았던 그 말씀이 저의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 눈물겹게 그자리에서 그대로 제 마음에 들어와 앉았습니다. 저는 거기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 사람들 4~5인 중에 한사람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지만, 힐끗 쳐다보고 지나쳐 간다. 아무런 부담감이나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지나간다.


그렇다면 오늘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기록된 레위인 서기관 바리새인...”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아름다운 동행>의 비전을 좀 더 구체화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길거리에 쓰러져서 그런 생각이 들었느냐고 하시겠지만, 참으로 신기할 정도로, 제가 쓰러져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눈꼽 만큼도 마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런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제가 노숙자도 아니고 남 보기에 걸인으로 보이지 않음에도 이런 일을 당하고보니 허술한 차림의 노숙자나 걸인이 이런 일을 당한다면 어떨까... 여러가지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대한 현대인의 무관심이 무서웠습니다. 20여분이 지난 후, 드디어 ‘선한 사마리아인’이 나타났습니다.


진땀으로 범벅이 된 저를 일으켜 안고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저의 땀을 닦아주면서, “정신 놓지 마세요! 정신만 놓지 않으면 삽니다! 지금 119를 불렀으니, 조금만 기다리세요...”하며 열심히 저를 흔들어 의식을 일깨우는 분은 정말 신실한 그리스도인일 것이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 와중에,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예! 기독교인입니다!”하는 대답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분으로부터 “예...저는 불자(佛者)입니다...”라는 대답을 듣는 순간, 저는 크게 한방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그 지하철 바닥에서 저는, 2천년 전 예수님 시대에도 여전히 이런 상황이었다는 깨달음과 함께, <아름다운 동행>이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을 올바로 섬기는 자세가 어떠한 것인지 엄숙하게 바로 고쳐잡는 순간이었습니다.


119로 실려간 저는 ‘과로와 스트레스’라는 상식의 진단과 치료를 받고 돌아왔지만, 일생에 다시 갖지 못할 깨달음을 가진, “아주 중요한” 경험을 주님이 주신 것이라 믿고 오늘도 <아름다운 동행>의 숙제를 안고 고민합니다. 동역자 여러분! 무더위에 지치지 마시고 파도타기처럼 그렇게 무더위를 안고 즐겁게 건강하게 여름을 나시길 바랍니다. 기도와 사랑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섬김이 박에스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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