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구술로 풀어 쓴 한국전쟁과 전후 사회

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한국전쟁에 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대부분 전쟁의 기원, 발발, 전개과정, 휴전 등 전쟁의 과정과 성격을 정치사적으로 다룬 것이었다. 대체로 그 연구 대상은 국가 또는 남성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전쟁미망인’은 ‘국가적 차원의 전쟁’이 ‘개인의 일상’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낼 뿐 아니라, 전쟁 후 국가가 어떻게 개인에게 전쟁의 책임을 전가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한국전쟁사의 비어 있는 반쪽을 채워준다.


저자는 인터뷰를 통해 전쟁미망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그 구술 내용을 토대로 그들의 삶을 복원하고 분석했다. 그 대상은 전쟁미망인 곧, 군경미망인·피학살자미망인·상이군인미망인과 그 자녀 45명이다.
그들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 또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있는 그대로 증언한다.
전쟁 당시 남편을 잃게 된 이야기, 피난 이야기, 전쟁이 끝난 뒤 살기 위해 어떻게 몸부림쳤는지, 여자의 몸으로 가장이 되어 차가운 사회의 바닥으로 진출하였던 이야기 등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임신 3개월이었던 구영선은 남편이 소집되어 나간 뒤 집이 통영이었기 때문에 트럭을 타고 마산으로 갔다. 임신 초기라 먹지도 못하고 토해냈다. 굶주리면서 임신 내내 전쟁터를 돌아다녀야 했다. 자신을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표현할 정도로 의식이 없는 몸 상태로 지냈다. 만삭인 채 통영 시댁으로 갔을 때, 본인을 향해 겨눈 총도 ‘아― 튀어나오는 건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감각이 둔해지고 의식이 없었다.
이 과정을 박수영은 “아이고― 배는 불러가지고 30리를 걸어가는데 요기만 조만치만 가도 오줌이 마렵고, 어휴― ‘여기서 차라리 내 죽었으면 좋겠다’고 그랬어요. ‘죽으면 너[희]들도 편하고 나도 편하겠다’”라며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혼은 대개 남편의 상이(부상상태)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정상호는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가 친구 사이라 “서로들 약주를 좋아하다 보니께 ‘네 딸 나 다구?’ ‘사위 삼자’”면서 결혼에 이르렀다. 그이는 시집에 와서 아랫목에 누워 있는 남편을 보고 나서 ‘속아서’ 결혼했음을 알았다.
정끝남도 형제들 가운데 막내로 올케 친정어머니의 소개로 결혼했는데 남편의 상이를 모른 채 결혼하고 나서는 1년 동안은 무서워서 말도 못 건넸다고 한다.

상이군인의 몸은 결혼한 여성들에게 전달되었고, 그들은 생계 활동을 하면서 남편의 몸을 돌보아야 했다. 육체적 고통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정신적 타격은 오랫동안 남아 있게 마련이다. 전쟁미망인은 분가를 통해 시가의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누워 있을지라도 ‘가부장’인 남편이 존재했고, 남편의 의심과 언어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언어폭력은 상대방에 대한 무시와 멸시를 동반했고, 그 폭력에 노출되었던 당사자는 자존감을 상실했다.

성장하면서 학살당한 아버지를 기다린 시간은, 성인이 된 뒤에는 짐이 되어 앞길을 막는 작용을 했다.
“우선 내가 받은 건 그런 스트레스. 그래 크게 요약을 하면 첫 번째 내 연좌제 했던 이런 것에서 오는 경제적인 어려움, 두 번째 그 산소 없을 때 자식들에 대한 저기, 또 그 아버지 없이 자란 저기 평판. 이런 거를 그냥 말로는 쉽게 표현하는데 이것을 살아오면서 피부로 느낀 사람은 엄청난 그 저기가 오는 거여. 그래 제가 우리 자식들한테는 후회 없이 할려고 노력을 했어요.”
그는 연좌제로 인해 사회생활에서 좌절을 겪었다.

이처럼 전쟁미망인들은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거나, 보도연맹 등에 의해 남편이 끌려가는 광경을 지켜보아야 했으며, 남편의 전사나 학살 소식을 접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전쟁미망인’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혼자 집안을 책임져야 했던 전쟁미망인들은 무엇보다 먹고 살아야 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들은 농사를 짓고 집안일을 했다.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을 나눌 수 없었다. 행상과 좌판은 물론이고 공장에서도 노동하였다. 전쟁미망인들을 통해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는 살림과 육아를 맡는다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깨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없는 집에서 젊은 전쟁미망인은 시부모와 어린 아이들을 보호하고 생계를 책임졌다. 시부모는 며느리의 일상을 통제하고 감시했다. 그들에게 남편의 집은 억압의 장소였다. 일상의 감시와 통제는 ‘며느리 만들기’의 한 방편이었다.
‘며느리 만들기’는 가족단위에서 그치지 않고, 국가가 전쟁 피해를 ‘전쟁미망인’에게 책임지우는 방식의 하나이기도 했다.


전쟁은 기존의 가치를 흔들어놓았다. 국가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았으며, 그 희생양은 주로 여성이었다. 국가는 전쟁미망인의 목소리를 침묵으로 가두었고, 자신의 전쟁 책임을 일상에서 감추어버렸다.


저자 이임하 씨는 ‘한국현대사와 여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10년 넘게 연구해 온 역사학자이다. 그녀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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