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진출 성악가 1호’ 김영미 교수, “나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나이였다”


프리마돈나 김영미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그녀에게는 ‘해외 진출 성악가 1호’란 타이틀이 붙는다.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1973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산타 체실리아 음악학교에 입학했고, 유학 중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979년 아탈리아 베로나 콩쿠르와 푸치니 콩쿠르 1위, 1980년 마리아 칼라스 국제 콩쿠르에서 ‘6명의 최고상’ 등 국제 성악 콩쿠르 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1983년에는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에게 “동양의 마리아 칼라스”라는 칭찬을 들으며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오페라 데뷔 후 30년이 훌쩍 흐른 지금도 김 교수는 무대에 선다. 그리고 지난 6월에는 자서전 ‘프리마돈나 김영미처럼’을 펴냈다. 책에는 젊은 시절의 영광과 상처, 그리고 50대 이후 나이 듦에 대한 고민이 골고루 녹아 있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나이”라는 그녀의 고백이 흥미롭다. 오랜 세월 해외에서 생활하며 노래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그녀가, 소프라노가 50세가 넘으면 무대에 올라가는 것을 기적처럼 여기는 한국 성악계의 현실과 마주한 것이다.

내 나이 55세, 국립오페라단으로부터 오페라 ‘노르마’의 주인공 역할을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의 주인공 노르마 역은 소프라노 배역 중에서 가장 어렵고 소화하기 힘든 배역 중 하나다. 누가 어떻게 노르마를 연기하고 노래하는가에 따라 오페라의 성패가 판가름 났다…“그럼 저희는 선생님만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국립오페라단 측은 내게 커다란 짐을 안겨주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포기하자.’ 그러나 생각과 달리, 문득 내 마음속에서 어떤 설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오페라가 어쩌면 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막중한 중압감에 시달리며 기도를 하던 중 갑자기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구약 성경에 나오는 모세였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올 때가 80세였다. ‘그래, 나도 기력이 쇠할 리가 없어! 나도 할 수 있어!’…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유명한 아리아 ‘정결한 여신’이 끝나자 박수가 파도치듯 이어졌다. 박수가 너무 길어져서 지휘자는 아예 지휘봉을 내려놓은 채 박수가 끝날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아리아가 끝나고 그렇게 오래도록 갈채를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박수를 받으세요.’


그렇게 심기일전하여 지난 3월에는 예술의전당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주인공인 15세의 ‘초초상’ 역을 맡았다. 당시 “50이 넘은 나이에 어쩜 저리도 편안하게 노래를 부를까?”, “15세의 초초상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연기하다니!”라는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나비부인’은 나의 오페라 인생 가운데 가장 많이 공연한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오페라의 주인공인 ‘초초상’ 역은 극 중 한시도 쉬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를 해야 하는 역이다. 공연이 끝난 후 기모노를 벗어 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힘든 역이다. ‘나비부인’을 마친 후 사람들이 이렇게 물어왔다. “김영미 씨, 언제까지 무대에 설 거야?” 올해 나는 한국 나이로 57세다. 노래를 시작한지 30년이 넘었고 지금도 노래를 한다. 그래도 내게 노래는 여전히 어렵다. 무대에 설 때마다 아직도 늘 긴장되고 떨린다.


외국에서의 ‘마담’과 한국에서의 ‘아줌마’는 차이가 트다. 우리나라에서는 20대의 아름다움이 대접을 받지만, 외국에서는 40대나 50대 중년여자의 아름다움이 더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노 교수는 “다른 이의 눈에 나는 그저 나이 든 중년의 50대 아줌마이지만, 무대에서는 실력 대 실력이다. 아무리 젊고 아름다워도 노래가 처지면 대우를 받지 못한다”며 “아줌마라고 해도 실력이 있으면 프리마돈나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아줌마들’에게 도전한다.

인생이라는 무대는 내가 연출자이고 주역이다. 늘 새롭게 다시 데뷔할 수 있다. 20대나 30대의 젊음과 매력에 집착하지 말고 또 다른 매력을 찾아 승부를 걸어야 한다. 50대의 나이에 등단해서 작가가 되고, 화가가 되고,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 프리마돈나는 누구나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나 환경을 탓하며 안주하지 않고 꿈을 찾아 끊임없이 자기를 갈고 닦은 자만이 인생의 진정한 프리마돈나가 될 수 있다. '프리마돈나 아줌마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박성희 기자
사진=두란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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