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아들과 세계여행 떠난 부부…“유년의 한때 가족끼리 24시간 부대낀 기억을 선물”

유학 간 부인과 두 딸의 자살에 장례를 치르러 갔던 아빠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른바 ‘기러기가족의 비극’이다. 생활고가 이유였단다.
사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미 기러기가족의 형태는 ‘가족’이 아니라며, 이런 문제들이 노출될 거라고 말해왔었다. 유창한 영어실력, 외국인 친구들, 드넓은 캠퍼스라는 신기루는 과연 ‘가족’과 맞바꿀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까?
다들 사교육의 올무에 사로잡힌 채로 죽어 가는데, 살던 집을 팔고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여행을 떠난 ‘미친 가족’이 있다. 책 ‘미친가족, 집팔고 지도 밖으로’의 주인공들이다. 당시 결혼 5년차 맞벌이 부부. 여행을 너무 좋아한 것이 탈(?)이었다.

하고 싶은 거 한다는데 여기까진 그래도 봐줄만하다. 그런데 이들에게 5세 아들 ‘한규’가 있다는 게 문제다. 조기유학을 해도 모자랄 판에 험한 여행에 43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다닌다니 말이다. 한규 아빠도 이게 부담스러웠는지 책의 프롤로그 전체를 ‘유년의 한때, 가족만의 온전한 시간만으로 충분하다’라는 내용으로 채웠다.

우리는 여행 준비를 하면서 한규가 자유의 여신상이니 에펠탑 따위를 기억하지 못할까 조바심내지 않았다. 그러나 유년 시절의 한때를 세 가족이 24시간 부대끼며 나눈 사랑만큼은 한규의 마음에 남을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뒤에 탄 아이가 5살 한규 사진출처=cafe.naver.com/nammisarang
2년을 계획하고 떠난 여행, 가벼운 관광정도가 아니다. 차를 사고팔고, 장도 보고, 사기도 당하면서 북미 · 중미 · 남미를 떠도는 그야말로 ‘야생 버라이어티’다. 한규는 아빠의 목에 올라타 이것저것 흥미를 보이다가도, 잠자리가 불편하면 투정을 부리는 영락없는 5살 아이다. 그래도 여행을 하며 사람들과 어울린 한규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 멕시코는 그런 곳이었다.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가 나서 안절부절못할 때 다른 곳에 있는 친구들까지 불러 타이어를 갈아주고,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내게 하늘을 가리키며 떠나가던 아저씨들… 차량 등록을 위해 다시 플라야 델 카르멘에 갔는데 자기 일처럼 도와준 아라…그 외 길에서 만나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고 수줍은 미소를 나눠주던 수많은 멕시칸들…….
감동의 물결은 콜롬비아에서도 이어졌다. 갑자기 멈춰서 시동이 켜지지 않는 자동차가 문제였다. 그런데 서있는 그들의 차를 보고 지나가던 차들이 줄줄이 차를 세우더니 경찰까지 불러주며 관심을 보이는 게 아닌가. 도착한 경찰은 한 술 더 뜬다. 견인차를 부르면 비싸다고 지나가던 차를 일일이 세워 수리할 수 있냐고 묻는다. 어쩔 수없이 견인차를 부른 경찰, 직접 가격 흥정까지 해주더니 “더 달라고 하면 내게 전화하라”며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떠났다.

그런데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했으니, 바로 아들 한규의 계속되는 설사였다. 침대와 바닥이 온통 설사로 덮일 정도였단다. 그런데 놀라서 울던 한규가 병원에 도착하자 “아빠, 나 괜찮아. 나 괜찮아”하며 오히려 떨고 있는 이들 부부를 위로하는 게 아닌가. 모기에 물려도 울상을 짓던 한규가 한 치 성장한 것이다.

“아빠~아! 나 하늘을 날았어! 나 새처럼 날았어!”
“한규야, 무섭지 않았어?”
“무섭긴~! 얼마나 재밌는데! 아빠, 우리 올라서 또 타, 또 타!”


아주 난리가 났다. 녀석, 다 컸구나 싶어 꼭 안아주는데 녀석의 기분은 아직도 하늘을 떠다니는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어떻게 뛰었는지, 뛸 때 자기는 발을 어떻게 했는지, 뱅글뱅글 돌 때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착지할 때는 ‘툭!’ 떨어지는 게 아니라 비행기처럼 죽 미끄러진다느니, 정말 종알종알 신나게 설명했다…다른 건 몰라도 만 세 살에 탔으니 한규가 국내 최연소 패러글라이딩 경력자가 아닐까.

2년을 계획한 여행이었지만, 아리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착한 이들 가족. 한규의 유치원을 결정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이미 한국어로 언어 체계가 잡혀 있기 때문에 스페인어로 소통해야 하는 이곳 유치원에서 적응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걱정할 게 아니었다. 2주간 아이들과 뛰어놀더니 스페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나? 긴 시간 세계인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던 한규에게 ‘언어’는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이들 ‘미친 가족’ 결국 그곳에 정착해 둘째도 나았다. 그리곤 또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지면 그렇게 한단다. 한규도 동생도 꼭 그만큼씩 자라날 것이다. 얼마 전 한 공중파에서는 “사교육 시간이 긴 아이일수록 우울증과 공격성이 높아진다”는 내용의 다큐를 방영했다. 앞으로 자살과 폭력사건은 더 늘어날 것이다. 더 끔직한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 열풍은 결코 삭으라들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이 책, 특히 기러기가족들에게 권한다. 진정한 ‘가족’이 되라고. 이왕이면 ‘미친가족’으로 말이다.

이범진 객원기자

미친가족, 집팔고 지도밖으로
이정현 지음, 글로세움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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