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에 열두 번의 보름달이 떠오르면 우리는 한 해가 지났음을 압니다. 그러나 보름달은 한 달이 흘러야 하고, 한 달은 서른 번 해가 뜨고 져야 합니다. 또 하루는 1440분이 흘러야 하고 그것은 8만 6400초가 지나야 합니다. 초보다 더 짧은 시간도 있습니다. 펨토초입니다. 1000조분의 1초입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그저 멈춘 듯한 조각 같은 시간입니다. 계측할 수 있는 가장 짧은 단위의 시간 같지만 펨토초보다 짧은 시간이 나타났는데 아토초입니다. 100경, 그러니까 10의 18승분의 1초입니다.

그 순간, 조각처럼 움직임조차 없는 시간들이 모여 하루가 되고, 한 주가 되고, 한 달이 되며, 한 해가 됩니다. 제 나이가 마흔다섯이니 14억 1912만초가 흐른 셈입니다. 어찌 보면 정지되어 있는 듯한 순간들이 흘러 아이는 어른이 되었고, 모든 나무들은 자랐으며, 바위엔 이끼가 덥혔습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한 시간에 10만 8000킬로미터의 속도로 돌고 있습니다. 1초에 30킬로미터를 도는 셈이지요. 그러니 1초를 산다는 건 지구가 30킬로미터 움직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시간은 곧 거리이고, 장소가 됩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배를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지요. 지구라는 배에서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나이를 들어가는 나는, 다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생명이란 그러므로 시간의 흐름이라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일이지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생명을 품고 살아가는 일이 신비합니다. 무소유의 삶을 살다 간 어느 승려의 뒷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요? 모든 생명은 그렇게 짧게 또는 길게 반짝이고 사라집니다. 그 명멸하는 생명들 속에 나도 있고 우리도 있습니다. 길면 길고, 짧으면 한없이 짧은 우리네 시간여행입니다. 겨울이 풀리고 봄이 피는 이 계절엔 나를 움직이는 시간의 힘에, 그 소리 없이 거대한 힘의 미세한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수많은 시간을 뒤로 돌려, 아니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을 뒤로 돌려 짧은 시간을 반짝이다 사라져버린 나사렛의 한 청년이 들리는 듯합니다. 나도 겨울처럼 풀리고 봄처럼 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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