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사상 동계 올림픽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그런데 그는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대회 전 모든 사람이 기대하던 현재 세계 랭킹 1, 2위의 선수가 아니었다. 그가 바로 21살 약관의 나이로 세계를 제패한 모태범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태릉선수촌에서 올림픽 전 ‘미디어 데이’를 할 때 어떤 기자도 내게 질문하지 않았다. 언론이 내게 무관심한 게 한편으론 서럽게 생각될 때도 있었다. 그래서 한번 해보자는 오기도 생겼다. 그 무관심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들 한다. 사회적인 관심을 끌기 위해 총기로 연쇄 살인을 하고, 국보 1호 문화재에 방화를 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물으면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모든 것이 외부의 무관심 때문일까?


모태범은 무관심을 발판으로 우리나라 빙상계가 수십 년간 애타게 기다려 온 올림픽 금메달을 만들어냈다. 이순신 장군은 모든 관직이 박탈 된 상황에서 백의종군해 나라를 구했다.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는 학사 학위만 가지고 중소기업의 평범한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일본인 전후 세대로서는 처음으로 2002년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모든 원인은 내부에 있었다. 밖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안에 있었던 것이다. 똑같은 외부의 무관심이 어떤 이들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성과를 만들어 내도록 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에 있는 것이다. 무관심이 문제가 아니라 그 무관심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문제인 것이다.


무관심에 무관심해야 한다. 나의 관심을 외부의 평가에 두지 말고, 나만의 가치 나만의 보람 나만의 비전에 두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기적과 이적을 베푸신 후 군중들이 주님을 왕으로 삼고자 할 때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으로 떠나셨다. 인기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세상의 박수는 허무할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왕이 되고자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던 것이다. 이 세상의 왕이라는 포지션은 그의 비전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다. 지위는 지위 자체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지위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뜻을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다.
DID는 세상의 관심을 향해 들이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관심 속에서도 이루고자 하는 ‘뜻’을 향해 들이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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