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복은 욕심을 채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절제하는 데 있다. 인간의 욕망에는 끝이 없다. 영성 훈련은 욕망을 다스리는 훈련이다. 기독교는 욕망을 정죄하지 않는다. 욕망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욕망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문제는 그 욕망을 어떻게 다스리고, 어떻게 승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인간에게 욕망이 없다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이미 죽은 것이다. 산다는 것은 욕망한다는 것이다. 식욕이 있음으로 먹고, 성욕이 있음으로 사랑하고 결혼한다. 그리고 자녀를 낳는다. 성욕은 단순히 쾌락만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다. 성욕은 새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기 위해 주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성취욕이 있음으로 배우고, 도전하고, 성취한다.


하나님께 욕망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그것은 비성경적인 기도요, 미숙한 기도다. 오히려 하나님께 자신 안에 있는 욕망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어떤 의미에서 욕망은 우리 안에 있는 소원이요, 불이요, 열정이요, 에너지다. 자신 안에 있는 욕망을 안다는 것은 자신을 안다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불타고 있는 열정을 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욕망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오히려 욕망을 깨닫고, 그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라. 육신의 욕망과 그 에너지를 거룩한 일에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절제한다는 것은 힘을 아끼는 것이다. 멈추어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것이다. 절제란 정도를 넘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힘은 조절된 힘이다. 절제된 힘이다. 댐의 물이 조절되지 않은 채 방수된다면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댐의 물이 잘 조절될 때 그 힘으로 전기를 만들 수 있다. 절제를 잘 할수록 우리는 자유 함에 이르게 된다. 음식을 절제하는 사람은 음식 앞에 자유롭다.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은 욕망 앞에 자유롭다. 어떤 유혹도 이겨낼 수 있게 된다. 진정한 자유란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하고,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바로 절제에서 온다. 절제란 고통을 먼저 선택하고 즐거움을 나중에 누리는 것이다. 절제는 성령의 열매다. 인간의 힘과 의지만으로 절제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야 한다. 그런 까닭에 절제하는 마음은 성스러운 마음이다.

강준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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