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내려오기> 토기장이 펴냄

‘산다는 것, 혹은 살아있다는 것이 도대체 뭘까?’
우리가 이런 질문을 가장 진지하게 던지는 때는 묘하게도 죽음 앞이다. 자신의 죽음은 아니더라도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불현듯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삶은 삶만으로는 온전히 설명이 되지 않고 죽음을 배경으로 깔 때, 비로소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행복하게 내려오기>는 죽음에 관한 책이다. 죽어가는 사람들, 혹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 이야기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풍경은 밝을 수 없다. 고통이 넘쳐나고, 절망이 가득하다. 통증은 뼈 속을 파고들고 가족들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한다. 최근 유명을 달리한 비운의 권투선수 최요삼의 가족들은 그의 뇌사판정 발표 앞에서 오열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죽음은 단순히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죽음에 이르는 기록이 보여주는 또 다른 풍경은 바로 ‘삶’에 관한 것이다. 죽음 앞에서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산들바람을 느끼기도 하고, 안개 낀 계곡의 아름다움이 선명하게 다가온다.(열두 번째 이야기 ‘내 몸이 원하는 것’) 혹은 부친의 죽음 앞에서 아들이 마라톤을 시작하기도 한다. 숨을 거둔 아버지에게 아들은 마라톤에서 탄 상품인 티셔츠를 입혀 입관시킨다.(열한 번째 이야기 ‘통증’)
삶과 죽음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혼재된 채 맞물린다. 죽음의 과정을 통해 삶은 비로소 약동하는 활력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삶의 과정을 통해 죽음은 삶의 완성과 또 다른 하나의 과정으로의 죽음이란 의미를 계시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아내는 최후의 순간에 아내의 눈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고(서른한 번째 이야기 ‘부드러운 치유’), 세면대에서 죽은 남편의 빗을 발견한 미망인 아내는 비로소 상실의 분노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 삶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죽음을 전제로 할 때이다. 죽음이 전제되지 않은 삶은 끝없는 지루한 일상의 연속일 뿐이다. 죽음이 없는 삶은 영속하는 고통일수도 있다. 삶과 죽음은 하나로 맞물려 궁극적인 삶의 의미를 드러내고 우리가 믿고 있는 모든 가치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 책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다. 삶이 소중하다면, 그 삶의 마무리가 되는 죽음 역시 소중하며, 잘 살기를 원한다면 그 삶의 대단원이 되는 죽음 역시 잘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야기,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재 건강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삶과 죽음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 죽음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 비로소 삶의 의미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삶을 통해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인간다운 품위를 손상하지 않은 채 맞이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인생의 마지막 무대에서 행복하게 내려온다는 것은 그래서 소중하다.


저자는 호스피스 간호사로 20여년 동안 많은 이들의 죽음을 지켜봐 왔다. 그의 그런 경험이 책 속에 잘 녹아 있다. 현재는 미국 미네소타 스틸워터에 위치한 성 크르와 병원에서 어린아이들을 위한 사별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으며, 레이크 뷰 병원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환자들을 위한 예배 프로그램을 인도하고 있다.

김지홍 북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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