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 생전 처음으로 교회에 나갔던 청년시절을 떠올립니다. 그때 제게 세계는 ‘닫힌 문’처럼 느껴졌고, 저는 마치 세상 모든 곳에서 출입금지 명령을 받은 사람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교회에 처음 나가게 되었고, 예수라는 사나이와 인사를 나누었고, 점차 그 존재의 신비에 끌려들어갔습니다. 인간 혼의 거대한 산에 부딪힌 느낌이었으나 그 산은 난폭하거나 거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통해 이 세상의 표면의 질서와는 다른 이면의 삶이 있음을 배웠고, 어느 순간 ‘길’을 찾았다는 확신이 찾아왔습니다. 이분께 내 생을 맡기는 것보다 더 멋진 일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저는 아주 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안락과 편안이 보장된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저는 자주 비장해졌습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그렇게 찬송할 때마다 실존적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익숙해짐에 열정은 식어가고...

그때에 비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관점은 많이 변했습니다. 근 30여 년을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사람살이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일들의 속살도 들여다 볼 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을 위로해야 할 때와, 꾸짖어야 할 때, 그리고 홀로 내버려두어야 할 때도 어느 정도는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계절 제 마음은 쓸쓸합니다. 마치 제 속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골 골짝에 갈 맘이 사라졌습니다. 멸시 천대 십자가를 지려던 장한 열망도 접었습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상을 성실히 채워가는 데 급급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익숙해지면서 예수와 만났던 그 첫 순간의 뜨거운 마음, 주님의 교회를 위한 열정이 조금씩 퇴색되어 감을 느낍니다. 참담합니다.
첫 사랑을 회복하라는 간곡한 주님의 초대를 듣습니다.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내서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여라.” 생각하고, 회개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병통은 무엇입니까? 지갑을 잃어버리면 즉각 알아차리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본디 마음을 다 잃어버리고는 잃은 줄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나를 잃어버리고 살았다는 자각은 아프지만 그것은 새로운 희망의 시작입니다. 회개란 삶의 초점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예수 정신, 예수 피가 최고의 가치

이용도 목사님이 1927년에 쓴 글을 사무치는 마음으로 읽고 또 읽습니다.
“피를 주소서. 우리는 눈물도 말랐거니와 피는 더욱 말랐습니다. 그래서 무기력한 빈혈 병자가 되었습니다. 피가 없을 때는 기운이 없고, 맥없고, 힘없고, 담력 없고, 의분 없고, 화기 없고, 생기가 없습니다. 그 대신 노랗고, 겁 많고, 쓸쓸하고,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피를 주사해 주소서. 그래서 우리는 새 기운을 얻고 화기와 생기 있고 기쁨이 있게 하옵소서. 우리는 죄에게 잡히어 죽어 가되, 그 죄와 더불어 싸울만한 피가 없습니다. 악마가 우리 인간을 유린하되, 그것을 분히 여기는 피가 없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당신의 피를 주사해 주옵소서. 그래서 죄악과 더불어 싸우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예수의 피가 우리를 구원한다고 고백합니다. 옳습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 속에 있을 때, 그래서 예수의 정신이 우리 속에서 살아날 때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이 됩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 속에서 뜨겁게 흐르면 우리는 새 사람이 됩니다. 죄에 맞서 싸우게 되고, 불의한 세상과 맞서 싸우게 됩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빈혈 환자가 아닙니까? 삶의 안전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입동이 지났습니다. 바깥 기온은 차가워지지만 우리의 내면은 주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다시 한 번 뜨겁게 타오르는 나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기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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