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 입양아의 주치의이자 엄마였던 홀트아동병원의 조병국 원장님에게서 다음 이야기 한 편을 듣습니다.


원장님은 김태희라는 탤런트 아가씨가 나올 때마다 TV화면을 유심히 바라본다고 합니다. 그 아가씨에게 관심을 두는 까닭은 얼굴이 예뻐서라거나 머리가 명민해서가 아닙니다. 환하게 웃는 김태희의 얼굴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1965년이나 1966년쯤으로 기억하였습니다. 서울시립아동병원에서 의국장을 지내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파출소의 한 경관이 길에서 주운 피덩이 어린아이를 속바지에 똘똘 싸서 병실에 둔 채 사라졌습니다. 자주 경험하는 일이었습니다. 속바지를 풀었더니 갓난아이가 탯줄과 태반까지 그대로 달고 누워 있었습니다. 아이를 응급처치하고 이름을 지어 병원에서 돌봐야 합니다. 이런 아이들의 이름은 대개 의사나 간호사가 지어주는데 작명에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어 성은 병원장의 성을 따르고, 이름 첫 자는 가나다 순서로 정하며, 이름 둘째 자는 여자아이에겐 ‘순’ 남자아이에겐 ‘석’ 그런 식으로 붙여서 정했습니다. ‘가순이’ ‘나석이’ 등으로 불렀지요.


그런데 이 아이에게는 그런 이름을 붙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면 태어나자마자 한 번도 어미의 품에 안겨보지도 못한 아이, 나름의 사정이야 있겠지만 낳아만 놓고 도망치듯 자리를 뜬 어미를 둔 이 아이에게 이름만큼은 제대로 지어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은 이름이 ‘태를 달고 온 여자아이’라는 의미로 ‘태희’라 지었습니다. 태희는 쑥쑥 자랐고 병원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그런데 태희가 4개월째 되었을 때 ‘선천성 심장기형’이란 진단을 받습니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전문가도, 돈도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태희를 외국인에게 입양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부모를 만나 수술을 받게 해주려고 한 것이지요. 다행히 태희는 그런 부모를 만나 입양이 되었는데, 미국에 간 지 한 달 만에 수술을 받고 숨을 거두고 맙니다. 수술을 받았지만 예후가 좋지 않았답니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생명들의 허무하고 속절없는 죽음을 자주 목격해 왔지만 태희의 죽음은 충격이었지요. 태희 이후에도 엄마의 태반을 단 채 병원으로 실려 오는 핏덩이가 종종 있었는데 원장님은 그 아이들에게 또 ‘태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태희는 제발 오래 살 수 있기를, 좋은 양부모를 만나 불행한 출생을 보상받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TV 속의 김태희가 환하게 웃으면 ‘태희’라고 이름 지어준 아이들도 TV 속 그녀처럼 밝게 웃고 있겠지, 저렇게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그러면서 소식 알 길 없는 많은 태희들의 안부를 탤런트 김태희가 대신 전해 주기라도 하는 듯 오늘도 어여쁜 그녀의 미소에 채널을 고정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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