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의 비유는 주인이 하인들을 불러 자기 재산을 능력에 따라 맡기면서 시작한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얼른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그렇게 해서 두 달란트를 더 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나가서 땅을 파고 묻어버린다. 세월이 지난 뒤 주인이 돌아와 하인들과 셈을 하는데, 다섯 달란트 받은 하인은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 받은 하인은 두 달란트를 더 벌어 왔고, 주인은 “참 잘했다. 너는 착하고 신실한 사람이다. 네가 작은 것에 최선을 다했으니 내가 훨씬 더 많은 것을 너에게 맡기겠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하인은 엉뚱하고도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는데, 이제 그 한 달란트를 도로 드립니다”라고 했고, 주인은 호된 질책을 퍼부었다.


왜 어떤 사람은 받은 것으로 열심히 일하고, 어떤 사람은 받은 것으로 열심히 일하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하나의 가설을 세워 보자. 달란트를 받고 열심히 장사하여 소출을 낸 사람은 받은 달란트를 아주 귀하게 여긴 것 같다. 그 달란트가 어떤 것인지, 누가 주었으며 왜 주었는지, 받은 달란트의 뜻을 깊이 헤아려 보고 깊이 새겼던 것 같다. 그는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특별하게 생각하여 마침내 고마워하고 감사했을 것이다. 그러니 달란트를 가벼이 여길 수 없었고, 아무렇게나 방치해 둘 수도 없었으며, 더 값지게 만들어야 했다. 반대로, 달란트를 받고도 소출을 내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고, 의미도 깊이 헤아리지 않으며, 아무렇게 방치해도 상관이 없다고 여겼을 법도 하다. 고마움도 감사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받은 삶의 기회와 특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것이 중요하다. 이 생각과 느낌의 차이가 전혀 다른 두 부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나누는 경계이다. 별것 아니라고 보면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렇게나 살 수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귀한 것이라고 보면 삶은 사뭇 달라진다. 기회와 특권을 감사하며 백분 활용할 것이며, 열심히, 착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성경은 이 선물로 받은 달란트를 기회로 삼고 특권으로 삼아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달란트 비유는 우리 삶이 결코 별것 아닌 게 아니라 참으로 귀한, 그리하여 감사할 수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받은 달란트, 선물로 받은 그 달란트에 감격하고 감사하여, 소중하게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의 결의가 아쉬운 오늘이다. 땅 밑에 달란트를 파묻어두고 허송세월하는 굳은 타성을 뒤엎고, 최선을 다하여 그 달란트를 활용하고자 하는 열의가 몹시 아쉽다. 믿음이란 곧 우리가 받은 달란트를 최선을 다해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내가 받은 달란트는 나의 평안과 나의 편리와 나의 허영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달란트를 주신 분의 뜻에 따라, 그의 영광을 높이고 더하기 위하여 적극으로 활용해야 할 따름이다. 나에게는 어떤 기회도 없고 어떤 특권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한 무엇인가 받은 바가 있으며,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귀히 여겨 감사할 수 있는 깊은 마음과 진실로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며칠 전 각가지 지능 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이 참여한 합창제에 대한 짧은 보도물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연주 그 자체가 벌써 감동이었지만, 그들이 함께 부른 노래 속에 더한 감동을 자아내는 노랫말이 있었다. 비록 장애를 가지고 있고, 비록 남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고 노래했다. 우리도 자기만을 챙기는 비좁은 마음이 아니라 남을 위하고 돌보는 마음쯤이야 다 갖고 있지 않을까? 내게 왜 이 달란트를 주셨을까 깊이 헤아려 감격하고 감사할 수 있으면 한다.

박영신 교수(연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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