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평 장로 인터뷰]

양인평 장로와 인터뷰를 하던 바로 그 시간에 성시화운동의 제안자였던 김준곤 목사가 소천하였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춘천성시화를 부르짖으며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운동을 통해 그 도시가 세계 평화의 중심으로 꽃피었듯 이 땅의 도시들을 제네바처럼 만들어보자, 외치던 김 목사의 제안에 감동을 받아 양인평 장로는 “성시화운동의 방화범”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성시화운동에 헌신한 그의 인생은 이제 지구촌의 성시화를 향해 달리고 있다.

“1995년 춘천법원장으로 취임한 것이 제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친구이자 같은 법조인이며 같은 교회를 섬기는 전용태 장로가 당시 춘천지검 검사장으로 발령 받아서 근무하고 있었지요. 춘천지방 기관장 모임을 해보니 70%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자연스레 술 마시는 문화가 없어졌고, 다시 자연스럽게 저녁모임을 조찬모임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인도로 수요일 저녁모임으로 자리를 잡아 ‘홀리클럽’이 시작된 것이지요. 전용태 장로가 먼저 불이 붙어있었고 제가 동역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양 장로의 ‘성시화운동 방화(?) 역사’는 바쁜 업무를 뒤로 한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양인평 장로와 전용태 장로가 함께 시작한 법무법인 로고스의 이야기도 자연스레 나왔고, 두 장로가 전보되는 지역마다 성시화운동과 홀리클럽운동이 불붙었던 이야기, 그래서 전 장로가 있던 청주와 양 장로가 있던 춘천지방 사이에 ‘청’‘춘’사업이 시작되고, 그것이 다시 양 장로가 대전으로 전보되면서 ‘대’‘청’‘춘’사업이 되어 공동의 목표로 3개 지방에 정착하고 보니, 전국으로 세계로 불길이 옮겨 마침내 지금은 국내외 46개 지방에서 그 열정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성시화운동은 기독교운동이지만 도시의 범죄 발생을 줄이고 도덕성을 회복하며 건강한 사회를 이루고 복지국가 건설에도 이바지하는 시민운동과도 연결되어 있다. 사명감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그가 살아가는 도시를 거룩하게 만들어가자는 뜻을 담았다.
“이제 모든 지역에서 목회자들이 주역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역을 보며 행복합니다.”
제2회 사시에 합격하여 부장판사로 지방법원장 고등법원장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성시화운동에 헌신해 온 양 장로는 자신이 성시화를 위해 헌신하는 영원한 선교사이기를 바란다. 복음으로 세상을 회복시켜 가려는 두 법조인의 아름다운 동행이 오늘의 성시화를 일궈낸 셈이었다.

박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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