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리는 신명나는 목회현장 ‘작은교회’

배부르리라
이태형 지음, 좋은생각 펴냄

지금도 작은 교회들이 많이 있다. 도시 변두리에서, 신도시 상가에서, 농촌과 어촌에서 우리는 작은 교회를 찾을 수 있다. 통계적으로 한국교회의 70~80%가 작은 교회이니 말이다.
그런데 매년 성도 수 100명 미만의 작은 교회들이 약 3,000개 씩 사라지고 있다. ‘세상의 희망’이 되어줄 교회가 절망 속에서 ‘사명의 길’을 접고 있는 이때, 대안은 무엇일까?
국민일보 공채 1기로 입사하여 종교부장과 기독교연구소장을 역임한 저자는 작은 교회 자체에서 대안을 찾고,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그래서 “작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작은 교회 10곳을 발굴하여, 그곳에서 사역하는 목회자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직접 돌아보니 10개의 작은 교회는 행복한 목회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는 목회, 남과 비교하지 않는 목회, 지역 사회와 동화하는 목회, 건강한 땀을 흘리는 신명 나는 목회가 거기 있었습니다…무엇보다도 목회자들의 얼굴이 맑았습니다. 그들 곁에는 남편을 존경하는 행복한 사모들이 있었습니다. 크고 작고를 옳고 그르고가 아니라 ‘다름’이라고 생각하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월포교회(강태봉 목사), 함께하는교회(김상훈 목사), 매곡교회(정도성 목사), GnG교회(방선기 목사), 시골교회(김락경 목사), 교회다움(민걸 목사), 작은교회(곽은득 목사), 광야교회(임명희 목사), 동면교회(박순응 목사), 시온교회(김영진 목사)의 따뜻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늘 환자 곁에 있던 그가 그립다”


그 청년 바보의사
안수현 지음, 이기섭 엮음, 아름다운사람들 펴냄

한 젊은 의사가 있다. 그는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명망가나 의료계 권위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학계에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의학자도 아니다. 그런데 그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예기치 못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하고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내과 전문의 안수현(1972~2006). 그는 환자의 살이 베일 때 내가 베인 것처럼 아파하며, 다른 이의 생명을 마치 자신의 생명처럼 귀히 여기고, 아끼고, 사랑했다. 2000년 의사들이 파업에 나섰을 때도 가운을 입고 진료실을 지켰다. 동료들의 결정을 저버리고 홀로 행동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지만, 동료 중 아무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그는 늘 그렇게 환자 곁에 있는 의사였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한 젊은 의사가 있다. 그는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명망가나 의료계 권위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학계에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의학자도 아니다. 그런데 그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예기치 못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하고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내과 전문의 안수현(1972~2006). 그는 환자의 살이 베일 때 내가 베인 것처럼 아파하며, 다른 이의 생명을 마치 자신의 생명처럼 귀히 여기고, 아끼고, 사랑했다. 2000년 의사들이 파업에 나섰을 때도 가운을 입고 진료실을 지켰다. 동료들의 결정을 저버리고 홀로 행동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지만, 동료 중 아무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그는 늘 그렇게 환자 곁에 있는 의사였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이 책은 그가 대학시절부터 홈페이지에 남긴 여러 글들이 엮어서 만들었다. 또 그를 추억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선후배와 동료들과,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낸 많은 이들의 이야기도 실렸다.
“여러 논리에 밀려 위로 받지 못하고 충분히 돌봄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제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합니다. 누구보다도 위로 받아야 할 사람들, 병원에서 도움이 될 길과 하나님 앞에서 자유 할 수 있는 길을 위해 기도합니다.”


황폐한 과거에서 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길 ‘용서’


용서없이 미래없다
데즈먼드 투투 지음, 홍종락 옮김, 홍성사 펴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화해위원회’ 설립은 국제적으로 선국적인 사건이었다. 그 어떤 나라도 과거에 저질러진 잔학 행위들을 드러내면서 이전의 억압자들과 화해를 시도한 적이 없다. 한 나라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이 전례 없는 시도의 중심에는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가 있었다.
“1994년 4월 27일, 투표권을 더기까지 나는 62년을 기다려야 했다…생전 처음 맛보는 달콤한 음료수 같은 자유의 감미로움을 어떻게 설명할까?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웠던 사람에게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느낌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나면서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에게 빨간색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화해위원회’ 설립은 국제적으로 선국적인 사건이었다. 그 어떤 나라도 과거에 저질러진 잔학 행위들을 드러내면서 이전의 억압자들과 화해를 시도한 적이 없다. 한 나라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이 전례 없는 시도의 중심에는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가 있었다. “1994년 4월 27일, 투표권을 더기까지 나는 62년을 기다려야 했다…생전 처음 맛보는 달콤한 음료수 같은 자유의 감미로움을 어떻게 설명할까?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웠던 사람에게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느낌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나면서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에게 빨간색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투투 대주교는 “사면을 베푸는 것이 처벌 면제를 조장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만 사면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황폐한 과거에서 떠나 더 나은 미래의 약속에 이르기 위해 진실화해위원회는 하나의 기둥이 될 것이다…용서함으로써 우리는 회복할 힘을 얻고,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려는 모든 것을 이겨 내며 인간답게 살 수 있다.”
그는 인종차별문제 해결 공로로 198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1986년 흑인 최초로 케이프타운 대주교가 되어 160만 명의 신자가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성공회의 수장이 되었다. 지금은 전 세계를 다니며 정의와 평화에 관해 강연을 하고 있다.


박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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