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F 학사수련회 강사로 방한,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죠”

저자와의 만남_마르바 던

문이 열리고, 인터뷰 장소로 들어오는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였다. 한눈에 봐도 다리가 불편하구나 싶다. 자리에 앉자 으레 숨겨야 할 법한 개인사가 술술 나온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 한쪽 귀마저 들리지 않는다. 다리는 보조기구를 차야 걸을 수 있다. 12년 동안 신장질환으로 투석을 받았다. 지금도 하루에 스물다섯 알이 넘는 약을 먹어야 한다.
2007년 EAGC(East Asia Graduate Conference, IVF 동아시아 지역 학사수련회로 3년마다 개최됨) 주강사로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 영성 신학자 마르바 던을 처음 본 순간, 적이 실망감이 일었다. 책을 통해 읽었던 바, 고대 기독교 영성과 전통에 깊이 천착한 학자이자 영성가로서 좀더 은은한 기품과 분위기가 풍겨나리라 기대한 걸까. 눈앞에 나타난 실제의 그는, 생각보다 훨씬 노구에 걸음마저 아슬아슬해 보여 저자에 대한 독자의 환상을 일찌감치 깨뜨렸다.
“지금까지 만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친절했어요. 한국교회가 굉장히 파워풀하다고 들었는데, 가끔씩은 미국교회도 그런 점을 닮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한국을 방문한 소감을 묻자 맑고 환한 미소로 자분자분 답하는 모습에서 실망감이 다시 기대감으로 뒤바뀌어 갔다. 마르바 던은 이미 전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신학교와 수련회에서 신학생과 목회자, 사역자들에게 기독교 영성과 예배를 강연하고 가르쳐왔다. 또 여러 나라의 기독교 전통과 영성, 문화를 두루 접해 왔다. 그래서일까. 그의 말에는 ‘가르치려드는’ 느낌보다는 ‘귀기울이려는’ 마음이 묻어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주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제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해외를 다니다 보면 많은 대화와 질문을 주고받으며 제 이해의 깊이와 넓이가 자랐는데, 이번에도 더 많이, 더 깊이 듣게 되길 원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는 서구 개신교 영성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 유진 피터슨과 리전트 신학교에서 함께 가르쳤고 책도 같이 집필하기도 했다. 안셀무스(Anslem),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등 고대 교부들의 영성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그에게 기독교 영성을 한마디로 무엇이라 할 수 있을지 묻자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답이 돌아온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으셨다는 것은 곧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그리워하고 원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맺는 관계성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늘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비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중심적, 자기 주관적 체험이나 사유를 영성이라고들 하지만 그건 바른 영성이 아닙니다. 아울러 참된 영성은 결국 우리 존재 자체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그 원동력이 되는 것이지요.”
평생을 육신의 고통과 연약함으로 씨름해 온 그가 그 힘겨운 시간을 견뎌내며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저는 건강 문제를 통해서, 제 현주소를 알게 되고, 많이 겸손해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지요. 또 하나 배운 것은 ‘기다림’이었어요. 고통이라는 것이 바로 사라지지 않고, 심지어 몇년씩 기다려야 사라지는 경우도 적잖았거든요. 한쪽 눈이 안 보이거나 한쪽 귀가 안 들리거나 한쪽 다리를 못쓰게 되거나 할 때마다, 왜 나는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고민하였고, 그때 이 모두가 하나님이 주권 가운데 행하시는 일이라는 답을 얻게 되었지요. 때로는 이런 일들을 허용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드러난다는 사실을 배우기도 했고요. 물론 이런 여러 육신의 고통을 하나님께서 언제나 육체적으로 치유해 주시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방식으로 치유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년여 전 신장 이식수술을 받고 12년 만에 처음으로 “몸 속에서 독소와 노폐물이 느껴지지 않아 깜짝 놀랐”던 그는, 수술 닷새 후 “바나나 한 개를 전부 다 먹으라고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겠는가” 반문한다.
약함을 적극 드러내고 그 약함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열려 있는 그의 모습에서 왠지 이미 작고한 일본 작가 미우라 아야코가 겹쳐진다. 오랜 세월을 척추 질환으로 누워 있어야 했던 아야코 여사의 약함과 마르바 던의 약함. 이 오랜 약함의 경험이 그들에게 ‘겸손’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을 더 깊게 하지 않았을까. 약함의 신학을 몸소 삶으로 체득한 마르바 던의 모습에서, 핀란드 경건주의 전통이 말하는 ‘알라티에’(Alati?, 스웨덴어로 ‘아래로 가는길’ 곧 겸손이라는 뜻)를 오늘에 체현하며 맑게 살아가는 진정한 영성가다운 면모를 보게 된다.

옥명호



마르바 던은 누구인가?
1948년 미국 오하이오 주 나폴레온 출생. 노트르담 대학(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기독교 윤리와 성서학 연구로 박사 학위(Ph.D.) 취득. 현재 캐나다 리전트 신학교 영성신학 교수, CEM(Christian Equipped for Ministry) 회원, 예배사역자(교회음악가). 저서로 <우물 밖에서 찾은 분별의 지혜> <안식>(이상 IVP), <약할 때 기뻐하라> <희열의 공동체>(이상 복있는사람), <고귀한 시간 낭비>(이레서원), <껍데기 목회자는 가라>(유진 피터슨과 공저, 좋은씨앗) 등이 있다.

<우물 밖에서 찾은 분별의 지혜>는 어떤 책?
마르바 던의 최신작. 분별과 의사 결정에 관한 흥미로운 방식을 소개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새로운 방식들에 귀기울이기를 요청한다. 또한 전 세계 각지에서 만난 그리스도인들의 감동적인 이야기와 기독교 전통 안에서 발견한 지혜를 통해, 오랜 신앙의 난제 중 하나인 분별에 관한 신선하고도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홍종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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