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에 따라 튈 때 튀고 숨을 때 숨어가며

어떤 이유로든 튀는 게 싫었습니다. 옷은 항상 회색, 감색, 검은색을 골라 입었습니다. 머리모양도 어떻게든 무난한 쪽을 선택했습니다. 코앞 슈퍼마켓에 라면 하나를 사러가도 반드시 긴 바지에 양말을 신어야 했습니다. 남들이 알아보면 번거로운 일이 생기는 유명인사도 아니고, 격식과 품위가 목숨보다 중요했던 조선시대 선비도 아니고, 되는대로 하고 살아도 자체 발광이 되는 연예인도 아니었지만 몹시 내성적인 성격에 고도의 열등감까지 겹쳐서 어떻게든 눈길을 받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나이가 들면서 증세가 많이 나아졌습니다. 오히려 뻔뻔스러움이 지나쳐서 스스로 당황스러울 때까지 있습니다. 헐렁한 운동복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건 기본이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대형할인점에도 갑니다. 불룩 나온 배를 그냥 노출한 채, 수영복차림으로 물속을 퍼덕거려도 낯이 뜨듯하지 않습니다. 빨간 셔츠를 입어도 이상하지 않고 머리를 빡빡 밀고 돌아다녀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아저씨’가 되면 낯에도 두툼하게 살이 붙는지 통 면구스러운 걸 모릅니다.
겨울 식물원에도 더러 튀는 놈들이 있습니다. 찔레나무만 해도 그렇습니다. 녀석의 주무기는 새빨간 열매입니다. 원색으로 차려입고 가을 한철을 보내던 나무들마저 브라운 계열의 수수한 옷으로 갈아입은 지금, 온몸을 붉은 색 보석으로 치장한 놈들의 자태는 화려합니다. 흰 눈이 내려 온 동네가 수묵산수화로 변할 때쯤이면 자못 도발적인 수준에 이릅니다.
인간계든 자연계든, 도드라지는 녀석들일수록 표적이 되기 쉬운 법. 가뜩이나 시장한 산새들이 온몸을 드러낸 채 먹음직스럽게 유혹하는 열매들을 그냥 지나칠 리 없습니다. 오며가며 군것질하듯, 또는 아예 작정하고 앉아서 쪼아 먹습니다. 포식자는 깊지 않은 대가리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멍청한 녀석들. 누리끼리한 색을 띠든지, 쪼글쪼글 말라붙든지 했으면 내 밥이 되진 않았을 텐데.’ 하지만, 정은 씨가 그러는데 열매를 뜯기는 쪽에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거랍니다. ‘오케이, 이제 됐어! 간신히 제 몫을 하게 됐군.’ 이 모든 과정이 생명을 퍼트리려는 나무의 전술이라는 겁니다.
새의 뱃속으로 들어간 열매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씨앗으로 거듭납니다. 위산으로 세척하는 과정에서 살점이 모두 녹아내립니다. 생명을 담은 알갱이는 똥에 섞여 다시 세상으로 나옵니다. 겨울 내내 바람에 씻기고 티끌 사이에 뒹굴어야 합니다. 따듯한 봄날이 와야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이 마무리됩니다.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고, 잎이 나고, 꽃이 핍니다. 그러고 보면 새들이 열매를 먹고 생명을 이어나간 건지, 녀석들이 새들을 이용해서 생명을 지킨 건지 애매해집니다.
선거철을 맞아 온 나라가 튀고 싶은 이들 천지가 됐습니다. 튀는 색깔 옷을 입고 눈길을 끌기 좋은 곳을 돌아다니며 기발한 이야기를 합니다. 나라를 가로질러 물길을 내겠다고 하고,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고 하고, 결혼하면 1억원을 준다고도 합니다. 요즘 눈이 침침해져서 그런지 튀는 말 속에 생명이 보이지 않습니다. 살이 문드러지고 오물을 뒤집어쓰는 한이 있더라도 큰 뜻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긴, 높으신 양반들 얘기할 게 뭐 있습니까? 분연히 일어서야 했던 시대를 한결같이 숨죽이고 산 주제에 무슨 소릴 하겠습니까? 이제 와서 대의니 희생이니 떠들기도 부끄럽습니다. 순리에 따라 튈 때 튀고 숨을 때 숨어가며 생명을 전하는 나무처럼 살기가 이렇게 만만한 노릇이 아닙니다.
잔소리는 고만. 다시 눈 내리면 집 앞이나 잘 쓸어야겠습니다.

최종훈
기자, 번역가, 출판기획자, 편집디자이너, 사진작가 등 다양한 종류의 문서작업들을 겸하고 있다. <목회와신학>을 거쳐 <일하는 제자들> <좋은 교사> <굿모닝 지저스> 등 창간작업에 참여하였고, 맥스 루케이도의 <일상의 치유> 필립얀시의 <하나님께 가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일>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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