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럴듯한 말과 생각으로 말하지만 결국 돈의 세계에 갇혀 그 테두리를 못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돈 계산에 붙잡혀 돈 중심의 논리 너머 새로운 차원의 삶을 소개하시며, 그 자신 그러한 세계를 열어 보이실 존재임을 상징으로 보여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한 교우가 응급실에 들어가 환자의 신분으로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는 응급실에서 속히 벗어나 조용한 입원실로 옮겨 가면 했지만 들어갈 입원실이 없다고 했습니다. 가까스로 알아보니 특실은 있다고 했습니다. 그곳으로 옮겨 제대로 치료를 받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비용을 치르더라도 ‘그 까짓 것’ 전연 문제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돈이라는 것이 조금도, 아주 조금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간의 관심을 사로잡을 정도로 돈은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졌습니다. 멀쩡한 사람들이 돈 때문에 갈라져서 분열하고 대립하기도 하지만, 돈 때문에 적대시 했던 사람들이 뭉쳐 한 덩어리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엄청난 힘을 가진 돈이라는 게 다가 아닐 수도 있음을 그날 응급실에서 새삼 발견한 것입니다. 의사가 구태여 입원할 필요가 없다는 진단을 내렸으므로 특실에 대한 생각은 접었지만, 잠시 동안이나마 저는 돈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잠시 동안 돈에 대해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까짓 돈?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무엇이 저 같이 평범한 사람으로 하여금 돈이 별 것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에 미치도록 했겠습니까? 아마도 그것은 그 교우에 대한 저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며, 그 관계에서 비롯되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자기 집안 식구를 생각하면서 순식간에 돈의 위력을 허물어버리기는 너무도 쉽고 또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러한 느낌과 생각의 수준을 넘어설 것을 요청합니다. 예수께서 어느 마을에 들러 음식을 들고 계시는데 한 여인이 매우 비싼 향유 한 병을 가지고 와선 그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주변 사람 몇몇은 “어째서 (이 비싼) 향유를 낭비하는가?” 하고 나무랐습니다. 향유를 팔아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도 될 텐데' 하고 그 여인을 호되게 나무랍니다. 이때 예수께서 "가만두어라. 어째서 여인을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좋은 일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돈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향유를 팔아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었을 텐데'라고 말하는 것은 돈의 크기와 쓰임의 문제입니다. 짐짓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는 엄청난 돈이라는 점을 내세워 비싼 향유를 낭비한 여인을 비판하는 논리가, 당시의 사람들이나 오늘의 우리에게도 쉽게 공감을 자아냅니다.

돈으로 둘러싸인 성 그 너머로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들 모두는 돈 중심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돈 중심의 의식 지평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러한 속된 의식 세계에 도전하십니다. 이렇게 돈 계산에 붙잡혀 돈 중심의 담론 수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무리를 향하여, 돈으로 다 풀어낼 수 없는, 돈 중심의 의식세계 그 너머를 보여주시고, 그 논리 너머에 있는 새로운 차원의 삶을 소개하시며, 그 자신 그러한 세계를 열어 보이실 존재임을 상징으로 보여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돈 중심의 속된 의식 세계에 사로잡혀 그 세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돈만 있으면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다고 믿는 세속의 신앙 행태에 지나지 않는, 세속 종교일 뿐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하나님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의로움과 정의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세속의 신앙에 맞서 세속의 종교를 거부하는, 역설처럼 들리지만 그러한 뜻에서 세속의 종교에 저항하고 그 세속의 신을 불신하는 예언자스런 무신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집안 식구 때문에 돈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맛보게 된 저의 특별한 체험은 분명 의미 있는 것이었지만 그 자유로움은 집안 식구의 테두리를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가 표상하신 높고 깊은 가치의 세계에 잇닿아야 더욱 온전한 삶의 세계를 누릴 것입니다.

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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