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은 양극화시대에 우리가 품고 있는 화해와 평화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가 보여주는 과제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하도록 부르시는 소명의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양극으로 치닫고 있는 양상입니다. 정치적 견해에 있어 진보와 보수의 편 가르기가 심화되고, 경제 위기 속에 기업인과 노동자의 입장 차이로 충돌이 빚어집니다. 또한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인해 남과 북 사이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의 여러 분야별·계층별 갈등의 이면에는 ‘진실한 소통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자신들의 입장과 의견만을 목청껏 외치고 있으며 다른 편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있는 듯 보입니다.

뿌리 깊은 ‘소통 부재’

이러한 갈등과 대립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자신이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가야 할지 묻게 됩니다. 양극을 지나 통합의 길을 소망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현 시점에서 진실한 소통을 실천하여 평화와 화해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품어야 할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이를 위해 풀러신학교의 총장인 리처드 마우(Richard J. Mouw) 교수가 그의 저서 ‘무례한 기독교’(Uncommon Decency)에서 제시한 몇 가지 관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첫째, ‘내 명분은 정당한가?’를 냉정하게 숙고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므로 어느 누구도 잘못된 입장을 지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뜨거운 논쟁에 깊이 관여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올바른 편에 서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편 139편 23절에서도 시인은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라 간구하고 있습니다.

둘째, ‘내 입장은 신빙성 있는 권위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물어 보아야 합니다. 루터의 경우 종교개혁이 교회 전체의 권위에 대항하여 단순히 그의 사적인 해석을 발표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성경과 기독교 전통에 대해 매우 주의 깊은 연구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뢰할만한 친구나 동료들의 조언도 충분히 참조하였습니다. 주의 깊게, 기도하는 자세로 탐색하고 자신 보다 더 큰 공동체적인 현명한 자문을 부지런히 구하며 옳은 입장을 찾아갔습니다.

나의 명분과 동기는 순수할까?

셋째, ‘내 동기는 순수한가?’ 살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명분을 지녔더라도 그것이 나쁜 동기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내세우는 명분이 참으로 변호할만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참으로 우리의 동기를 유발하는 것인지를 자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다른 이유로 이 문제에 뛰어들지는 않았는지, 우리의 세력을 하나로 묶어 줄 명분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지금 추구하는 것이 권력이나 복수, 또는 명성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넷째, ‘내가 사용하는 수단이 내가 추구하는 선한 목표에 걸맞는가?’ 따져보아야 합니다. 만일 지금 시점에 대화를 그만둔다면 어떤 결과를 만들게 되는지, 그것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결과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우 교수의 관점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소통의 소원(疏遠)함으로 만들어지는 갈등상황과, 그 갈등 속에서도 소통의 부재로 가속화되는 대립상황을 안고 있는 우리 사회에 우리 자신의 의사소통법에 대해 성찰해 보게 합니다.

오늘 같은 양극화시대에 우리가 품고 있는 화해와 평화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가 보여주는 과제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하도록 부르시는 소명의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평화를 일구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을 뒤따라가며 진실한 소통의 실천으로 화합을 만드는 데 동역해야 할 것입니다.

손인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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