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하나]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4월호▶ '고난'과 '부활' 위한 네 편의 묵상자료 제공

절망과 죽음, 그리고 희망. 이 낱말 하나하나를 그리스도교회의 특별한 절기에 하나씩 대입하면,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이다. 4월(부활주일을 정하는 다소 복잡한 방식에 따라 드물게는 3월이 될 수도 있지만)은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한 달이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4월호에는 고난주간 · 부활절 특집이 실렸다. 성목요일, 성금요일, 성토요일, 그리고 부활주일에 묵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네 편의 글이 눈길을 끈다.

월터 웽거린의 ‘성목요일’은 예수님을 진짜로 보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통해,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고전 11:23)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눠 주시던 그 최후의 만찬이자, 최초의 성만찬의 의미를 우리 어른들에게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버지니아 스템 오언스의 ‘성금요일’은, 이제는 상투적으로 들리기까지 하는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하는 엘리엇의 ‘황무지’를 그리스도인 영문학자가 한 편의 에세이로 다시 쓴 듯 한 느낌을 준다.

“내가 언덕배기를 내려와 강으로 향하고 있던 그 봄날 아침에, 예수께서는 골고다에 오르기 시작했다.”

만발한 꽃들과 봄의 생기가 대지를 뒤덮는 것을 보면서도 이 글을 쓴 이의 기분이 마냥 좋지 않음은, 세상이 이 생명을 낳게 하신 이의 죽음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의 불편함 때문이다.

친구의 “돌이킬 수 없는” 죽음 앞에서 필립 얀시는 이런 상상을 했다. 그 친구의 ‘장례식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더니, 놀랍게도 주차장에 친구가 서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그 일이 일어난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래서 얀시는 이렇게 말한다. “부활은 우리가 도저히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돌이킬 수 있는 희망이요 믿음이다.”


박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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