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가까이 지체된 방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9월 8일부터 12일까지 허락된 방북 기간 동안 한민족복지재단의 농업사업을 위한 학자들과 동행하며 평양 시내, 숙천군 약전농장과 평양시 순안농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한 달 전에 큰 수해를 당하였고, 또 한 달 뒤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며, 방북 기간에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관계국 기술자들의 방북이 이뤄지고 있었다. 특히 ‘9?9절’도 포함되었다. 2007년 9월, 평양보고서를 다음 열 장면의 사진에 담아 보았다. (편집자 주)

01_40년만의 수재 그 이후

지난 8월 중순 단 5일간 강원도, 평안남도, 황해북도, 함경남도 등지에 내린 비는 500~600mm. 지난 1967년 평양이 물바다가 됐던 대홍수 이후 최고의 강우량이다. 북한과 국제적십자사가 밝힌 인명피해는 사망과 실종 300여 명에 이재민이 35만 명. 곡창지대인 황해북도 농경지의 70%가 피해를 입었으며, 학교는 물론 발전소와 탄광, 주요 공장들도 상당수 피해를 입었다. 수재 이후 북한 당국은 피해 상황을 신속하게 보도하고 남한과 국제기구 등에 구호를 공식 요청했다. 남한과 국제사회도 긴급 구호 의사를 밝혔고, 식료품을 비롯한 생필품 의약품 및 채소 종자 등을 지원했다. 북한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도 이러한 남측의 구호활동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수재 이후 한 달이 지난 평양시는 수해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만큼 눈에 띄게 복구가 되었다. 대동강변으로 남측이 긴급 제공한 채소들이 다시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평남 숙천군 약전농장과 평양시 순안협동농장에서는 물에 잠긴 논과 밭을 복구하느라 며칠 밤을 지샜다고 했다. 덕분에 벼농사 작황이 예년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집중호우가 내린 황해북도와 평안남도의 농장들 가운데는 작황이 작년에 비해 절반으로 뚝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사진은 순안농장과 대동강 주변의 모습.

02_평양은 지금 “맑음”

9월 9일, 이른바 북한 건국일인 ‘99절’의 평양은 맑은 날씨와 함께 울긋불긋 한복을 입고 나들이하는 시민들의 발걸음도 가벼워 보였다. 주체사상탑에서 바라본 대동강 흐르는 평양 모습은 여유롭고 평화롭다. 수재의 흔적도 사라진 듯하고, 무엇보다 비핵화로의 움직임도 활발하여 마음이 가벼웠나 보다. 그만큼 통일의 날도 가볍게 올 수 있을까?

03_유채꽃 피는 약전마을

한민족복지재단의 농업협력사업은 이제 유채를 심어 그것으로 기름을 짜내는 데까지 이르렀다. 독일에서 가져온 유채 종자는 추운 북한지방에서도 잘 자랄 것이라고 내다본다. 관계자들은 말한다. 내년에는 이 유채를 수확하여 얻은 기름으로 트랙터를 움직일 것이라고…. 땅이 기름져 약초 재배가 성하던 땅 약전리, 이제 그 약전리가 ‘유채 피는 마을’로 기억될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04_풍년 가을이 온다

남쪽에서 복토직파기술과 농기계를 제공하고, 북쪽의 볍씨와 노동력이 한 데 어우러져 재배한 약전 농장의 벼는 대홍수를 겪고서도 말끔하였다. 그렇게 남과 북이 함께하면 풍년 가을을 맞게 되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통일도 남과 북의 의지가 결집된다면 외세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일까? 다시 북한 들녘에서 풍년가 소리가 들리기를 기도한다.

05_박명순 위원장

작년 가을 추수하는 들녘에서 박명순 약전리 협동농장 위원장은 갓 추수하여 빻은 쌀로 떡을 빚었다. 그 떡을 남측 인사들의 입에 넣어주며 풍년의 넉넉한 마음을 전했다. 그날 약전리에는 이미 작은 통일이 와 있었다. 그때 본 박 위원장의 웃음을 올 가을에도 볼 수 있을까? ‘여장부’라는 소문답게 박 위원장은 뛰어난 리더십으로 약전리 농장을 북한에서 가장 생산성 높은 농장으로 변모시켰다. 박 위원장은 남측의 기술 제공을 신뢰하고 받아 들였고, 남측은 그녀의 리더십과 경륜을 신뢰하였다. 그런 아름다운 신뢰의 만남이야말로 통일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06_북한 식량개선을 위한 아름다운 헌신

새로운 농법을 전수하는 박광호 교수(한국농업대?사진 왼쪽에서 시계방향), 유채농사를 통해 에너지 문제 해결 및 외화 벌이에 기여하려는 이정수 사장(나름 대표), 이제는 은퇴하고 북한 농장의 병충해 해결에 맨발로 뛰어든 김장규 박사(한민족복지재단 병충해 전문 농업위원),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북한의 채소작물 보급에 바치려는 유근창 교수(전 강원대 농대). 그들의 열심과 헌신에 북한의 농부들은 귀를 기울이고 머리를 숙여 존경을 표하였다.

07_빵을 나누면 통일도 가깝다

한민족복지재단이 설비기계와 재료를 제공하여 운영되는 평양시내 어린이제빵공장. 여기서 구워낸 빵이 어린이들에게 전달된다. 1998년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발육 부진 아동이 62%를 차지했으나, 2002년에는 42%, 2005년 37%로 줄었다고 한다. 또 응급 구호를 받지 못해 사망하거나 심각한 영양결핍 상태의 어린이가 2002년에 7만 명이던 것이 2005년에는 4만 명대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원인은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 덕분으로 드러났다. 빵을 나누는 일, 그것은 이미 통일이 시작되었다는 의미 아닐까?

08_칠골교회

봉수교회에서 예배 드릴 것을 기대했으나 아직 창에 유리를 달지 못한 바람에 예배 장소를 칠골교회로 정했다는 북측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남한에서 생각하는 교회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이름이 찬양 받는 공간이며,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는 공간이다. 거기서 나중의 창대함을 기도하였다.

09_알타리김치 먹으러 오시라요!

남측에서 보낸 종자를 북한의 농민들은 정성껏 심고 가꾸었다. 남측의 전문가조차 그 재배기술이 우수하다고 놀랄 만큼 파릇파릇 잘 자라고 있었다. 농민들은 물었다. “알타리무가 뭡네까?” 남쪽에서 보낸 알타리무를 심었지만 그 용도를 몰랐다. 아직 북한에는 채소종자가 그리 다양하지 않다. 유근창 교수는 알타리무로 김치 담그는 법까지 소개하였다. 김치냉장고 없이 오래 보관하는 방법이 난관이었으나 북측 농민들이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제 올 가을에는 북한에서도 처음 알타리김치를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내년에는 브로클리와 방울토마토까지 북한 땅에서 재배될 것이라며 함께 기뻐하였다.

10_해 뜨는 평양

평양의 아침을 밝히는 햇살이 떠올랐다. 시민들은 줄을 서서 전차에 올라탔고, 학생들은 종종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어둡던 땅이 환하게 밝아왔다. 태양을 보면서 하나님께 빌었다. 분단 현실을 살며 아파하는 수많은 이산가족들의 마음까지 밝혀줄 환한 태양이 떠오르기를….

사진?글=평양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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