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동안 숨어서 가난한 6000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 수백 억 원을 지원해 온 어느 독지가의 이야기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듭니다. 장학금을 받은 대부분이 그의 이름조차 모르며, 그 흔한 장학금 전달 사진 한번 찍은 적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큰돈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지원한 사실도 놀랍지만 43년이라는 시간을 꾸준하게, 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지원해 온 사실이 더욱 마음을 움직입니다.

2월 7일 88세의 생을 마감한 최형규 씨입니다. 3.15 부정선거를 지휘한 내무장관이 그분의 친형이었다는, 불명예스런 가족사 때문에 자신의 선행을 숨겨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뚜렷한 것은 사람을 키우고 싶어 했고, 숨어서 돕는 것을 더 편하게 여겼으며, 젊어서 비교공장의 직공과 연탄장사 쌀장사 등을 하여 돈을 모았다는 사실 등입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오래하지 못했고, 나라에 감사하는 마음이 컸던 모양입니다. 그의 선행을 알고 있던 신문기자조차 그의 뜻을 존중하여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 않았다 하니 그의 뜻이 얼마나 굳셌는지 짐작이 갑니다.

물론 드러내고 드러내지 않고, 그런 게 언제나 중요한 건 아닙니다. 드러내어 세상을 밝히는 일도 때로는 충분히 아름답지요. 단지 끝내 숨어서 해온 그의 마음 언저리엔 자신의 선행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어서, 남들로부터 칭찬받기를 거부하는 ‘큰마음’이 있었지 싶습니다. 범부들의 잣대에 연연하지 않고 내 안에 굵고도 도도한 물길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끔 우리 곁을 지키고 있지요. 그들 덕분에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은 ‘사소한(?) 가치’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리고 이렇게 지켜낸 사소한 것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건강하게 만드는 ‘면역력’이 되어준다는 걸 우리는 또 잘 알고 있지요.

한 사람이 인생을 바쳐 일궈낸 그 가치들을 또 누군가 이어서 지켜내 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어쩌면 성도로 살아가는 일과도 다르지 않을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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