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길 살아온 두 어르신들의 우정…만남은 늘 가까이 있어

최 장로님은 원래 대단한 사업가셨다. 그러나 사업을 크게 두 번 실패하신 후 세상과 관련된 일을 모두 접고 늦은 나이에 전도사 고시를 치르고 목회길에 들어서셨다. 은퇴하시고 84세까지 시골에 계시다가 도시로 오시면서 우리 교회에 나오셨다. 청년목회를 하는 교회에서 외롭게 다니시다가 같은 교회 권사님의 아버님이신 박 장로님을 알게 되셨다. 박 장로님은 평생 교육자로 사신 분이다. 신앙은 그리 깊지 않으셨다. 전에 계시던 교회에서 박 장로님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데다가 연로하셔서 명예장로의 이름을 드린 것이었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는 복잡한 일이 생겨 아예 교회를 안 다니고 계셨다. 최 장로님은 두 살 아래인 박 장로님의 이런 과거를 알고 매일 기도하면서 다가가셨다. 양반집 대문 같았던 박 장로님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셨고, 급기야 교회에 나오셨으며, 두 분의 깊은 만남이 시작 되었다.

#박 장로님의 마음이 열리고

인생길에서 한때 실패를 경험했지만 결국 신앙으로 성공하신 분과 신앙에서는 문제가 있었지만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평가받는 분. 이 두 분의 만남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동행’으로 이어졌다. 두 분은 아주 긴 세월을 생소하게 걸어온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서로 신기해하며, 감동하며 어울리셨다. 때로는 정치 이야기를 심도 있게 다루고, 앞으로 남은 인생에 대한 꿈도 나누었다.
떡갈나무가 은은하던 지난 가을에는 박 장로님이 은퇴 직전 교장으로 계셨던 초등학교에 함께 가셔서 교정을 거닐며 유년의 추억도 길어 올리시고, 근처에 있는 ‘추억의 손 자장면’ 집도 함께 들렀다. 두 분의 우정은 절정에 이르렀다. 자칫 외로울 수도 있었던 최 장로님 그리고 신앙에서 낙오를 할 수도 있었던 박 장로님. 이 두 분은 황혼이 지는 들길에서 만남과 동행이라는 신비한 힘을 통해 삶을 완성시키며 존경도 기쁨도 공유하셨다.
그러나 2년에 걸친 두 분의 동행은 끝을 맺었다. 하나님께서 박 장로님을 먼저 부르셨다. 최 장로님은 박 장로님의 발인예배에서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동행자를 잃은 슬픔과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최 장로님께서 박 장로님께 편지를 쓰셨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한 분은 가고 한 분은 남아

“박 장로님. 나이가 많아서 세상을 떠나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돌아가셨다는 것은 장로님께서 85년 동안 세상에 오셨다가 영원한 본향인 천국으로 가신 것이니 오히려 복되고 기쁜 죽음이라 생각됩니다. 장로님은 일평생 철모르는 아이들을 키우시고 가르치셔서 나라의 기둥들로 만드셨으니 그야말로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사신 것입니다. 박 장로님. 제가 바른길교회에 처음 왔을 때 많이 외로웠습니다. 그러다가 박 장로님 만나고 신앙을 나누고 인생을 나눌 수 있어 얼마나 고마웠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장로님과의 추억이 다시금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시골초등학교 근처의 손 자장면 가게, 푸른 동해가 보이는 횟집. 치악산 기슭의 명랑한 계곡…, 다 장로님과 다시 가보고 싶은 곳들입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장로님, 내 인생길에 동행자가 없어 아쉬움과 그리움이 가득하지만 장로님은 천국으로 가셨고 우리 가까운 시일에 하나님 앞에서 다시 만날 것이니 그게 제게 위로가 됩니다. 저에게 따스한 우정을 주신 박 장로님, 주안에서 편히 계십시오.”
두 분 장로님은 아직도 인생의 깊이와 삶의 길이를 채우지 못한 나에게 많은 의미를 건네 주셨다. 진정한 만남은 소박하게 늘 우리 주변에 준비되어 있으며, 동행한다는 건 이익을 추구하거나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그 자체가 서로에게 유익하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이별은 슬픔이 아니라 약속이고 또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최형철
원주 바른길교회 담임목사이며 IVF 이사이다. 청년목회를 하고 있어 늘 그의 주변에는 대학생들이 북적거린다. 기독교적 이성교제와 세계관 그리고 문화에 대해 청년들과 함께 고민하며, 틈틈이 수채화를 그리며 글을 쓰고 요즘엔 사진에까지 끼를 뻗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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