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청기도 | 잰 존슨 지음, CUP 펴냄 ] 

경청기도를 실행하면 하나님과 연대감이 생긴다. 거기서 하나님은 우리 삶의 산만함을 치유하실 수 있다. 그리고 혹 당신도 겪고 있을지 모를 다음과 같은 건강치 못한 영적 상태들도 치유하실 수 있다.

이 책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제목을 갖고 있다. 한국어 번역본의 이름은 ‘경청기도’지만, 원 제목은 ‘When the Soul Listens’, 즉 ‘영혼이 귀 기울일 때’이다. 우리의 영혼이 고요히 가라앉아 조용히 귀 기울일 때, 절대자의 음성을 듣기 위해 내면으로 깊이 침잠할 때, 그런 의미이다.

우리의 기도는 그동안 너무 시끄러웠다.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이자 교제’라고 보았을 때, 우리의 기도는 늘 일방통행이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며, 끊임없이 내 이야기만을 쏟아놓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생각해보라. 한 쪽만의 끊임없는 주장과 요구는 ‘대화’가 아니라 ‘강요’이다. 교제는 서로 소통하는 것이고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소통하고 공유하기 위해서는 말하고 들어야한다. ‘비움’이 없이는 ‘채움’도 없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이성희 목사(연동교회)는 아주 적절한 예화를 하나 소개한다.

‘오래 전 테레사 수녀가 미국을 방문하여 CBS의 유명 앵커 댄 래더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 뭐라고 말씀합니까?” 테레사 수녀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답했습니다. “듣지요.” 의외의 대답에 당혹스런 표정을 짓던 래더가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이 듣고 있을 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테레사 수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분도 들으신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 아닌가? 이 목사는 그래서 ‘참된 기도는 듣는 것이며, 침묵이며, 경청입니다. 소음과 조잘거림 속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말하기와 듣기로 진행되는 기도 가운데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듣기입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데, 이것이 우리나라로 넘어오면, 맥락이 달라진다.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지지를 못하고 ‘홰까닥’ 색깔이 칠해진다. 우리가 많이 들었던 ‘정통보수주의의 시각’이라는 것이다. 한국교회를 굳건하다 못해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는 이 정통보수주의는 ‘경청기도’(과거에는 ‘관상기도’로 불리는)에 즉각적으로 ‘이질감의 경계령’을 발동한다. 이 기도의 뿌리가 ‘비개신교’ ‘비보수주의’ ‘비개혁주의’ 계통에서 나왔다는, 그래서 절대로 곱게 봐줄 수 없다는, 근엄한 ‘정통’의 목소리다.

이 ‘피할 수 없는 부담감’ 때문에 또 한 명의 추천인인 노상현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는 몇 가지 ‘보호막’을 친다. ‘분명한 것은 경청기도는 오랜 기독교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과 ‘출판사가 복음주의 대표격인 NavPress란 점’,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신뢰받는 달라스 윌라드가 책임편집을 했다’는 점, ‘저자 잰 존슨은 영성 기도 부분에 박사학위를 받은 권위자로 복음주의 문화에서 인기 있는 영성 지도자며’ ‘검증된 사람’이라는 길고 고된 보호막이다.

한 권의 책 이면에 깔린 ‘정통주의의 그림자’는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서도 들린다. 저자는 ‘경청기도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도 아니고 영적으로 높은 차원에 이르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과 함께 있음으로 갈급한 영혼의 필요를 만나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도피주의나 신비체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 일화를 통해 설명한다.

‘한 늙은 농부가 날마다 마을 교회당에 들어가 무릎 꿇고 기도했다. 무슨 문제로 그러느냐고 누가 묻자 그는 말했다. “나는 그냥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바라보십니다.” 농부는 도피하거나 황홀경을 구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의 임재를 누린 것이다. 경청기도를 실행하면 하나님과 연대감이 생긴다. 거기서 하나님은 우리 삶의 산만함을 치유하실 수 있다. 그리고 혹 당신도 겪고 있을지 모를 다음과 같은 건강치 못한 영적 상태들도 치유하실 수 있다.’

흔히, ‘수동성’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혹은 나약하거나 권장할만하지 않은 것이란 가당치 않은 오해를 받는다. 그러나 삶을 살다보면 수용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적극적인 행위인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공격하고 처단하는 것보다는 수용하고 용서하는 것이 훨씬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이다.

저자는 경청기도가 바로 그런 ‘하나님께 초점을 둔 이타적 기도’이며 ‘그것이 경청기도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이런 경청기도가 주는 경이로움은 애버리 브룩은 이렇게 설명한다.

‘말없는 깊은 경청을 우리는 교회에서도 경험할 수 있고, 대화가 잠깐 끊긴 복된 순간에도 경험할 수 있고,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에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주 잘 알고 싶어진다. 그래서 옛 친구와 그리하듯 하나님과 같이 한 시간 동안 말없이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다.’

‘오랜 친구’와 묵묵히 앉아있을 수 있는 기쁨과 아름다움, 경청기도의 핵심이다.


김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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