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에 실려 가는 나뭇잎처럼 은혜에 실려 가는 나의 삶. 거친 들을 지나왔지만 거친 파도 건너왔지만 내 영혼엔 항상 평화의 노래. 은혜로 사니 쉽구나 은혜로 사니 정말 좋구나”
자동차로 먼 사역 길을 오가면서 작사·작곡의 영감을 자주 받는다. 위에 소개한 글도 얼마 전 지방을 다녀오던 길에 차 안에서 떠올린 찬양 가사의 일부다. 은혜로 사니 쉽고 은혜로 사니 좋다는 고백을 당신도 하고 있는지, 혹은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나를 싣고 가는 은혜의 물결을 알지 못 했으면,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착각해 모든 순간 궁리하고 도모하며 통제하는 피곤한 삶을 살 뻔 했다.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그가 애써 통과한 깨달음의 여정을 되밟고 살 필요가 있을까? 솔로몬의 어깨를 딛고 훌쩍 뛰어오르는 성도를 자주 만나고 싶다. 가급적 의미 없는 분주함에 연루되지 않으려는 습관 때문에 나의 일상은 일과 쉼이 잘 마블링 되어 있다. 고기와 기름이 잘 섞여 최상의 상태로 마블링 됨으로써 최고급 쇠고기가 되는 법이다. 과로의 끝에 넘어져 안식을 구하고 안식의 끝에 불안해서 일에 뛰어드는 순환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일과 쉼의 경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려 있는 오묘한 균형을 사모해 보라.
바나나 맛 우유에 바나나가 들어있지 않는 것처럼, 은혜로운 삶에도 은혜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은혜로움’과 ‘은혜’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 하면 느낌에 취하여 살다가 실체를 놓치게 된다. 현실 너머 저 편에서 은혜가 손짓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한 가운데 은혜가 심장처럼 뛰고 있다. 참된 은혜에 깊이 던져지는 것이 두려워서 은혜로움이라는 가상현실에 스스로를 가두고 머뭇거릴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은혜로 사는 삶의 배경에는 찬양이 흘러야 제 맛이다. 보좌에서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는 단 한 분의 위대한 관객을 위하여 나는 노래하리라. 은혜의 물결에 유쾌하게 실려 가며 실눈 뜨고 세상을 바라보리라. 그러면 어디에서나 기막힌 풍경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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