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길을 나의 길로 삼는 일

<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생명 평화 섬김으로 걸어가는 순례자의 노래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고 말한 사람은 바울 사도이다. 지식에도 ‘급’이 있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지식은 예수를 앎으로써 더욱 고상해야 한다는 뜻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고상한 지식을 통하여 천박한 지식이 있음을 깨닫는다. 김기석 목사는 내게 그런 고상한 지식에 대하여 말해줌으로써 천박한 지식을 경계하게 만든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다.
김 목사의 신간 <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청림출판 펴냄)는 그래서 반가움이 우선 묻어오는 책이다. <기독교사상>에 ‘하늘 땅 사람 이야기’란 꼭지로 연재해 온 글을 다듬어 모은 이 책의 중심은 ‘길’이다. 로드무비를 연상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말하는 길은 ‘인생의 길’이다. 더욱이 예수를 좇는 인생이라는 일반명사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김 목사는 ‘길’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초대교회 교인들의 별명은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었다. 그 길은 물론 예수라는 길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길을 나의 길로 삼아 살아가는 것이다. 길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 넘실거리는 요단강 물에 첫 발을 내디딘 제사장들의 가슴 서늘한 결의를 떠올린다. 물론 풍랑이 이는 바다를 걷겠다고 나섰던 베드로의 비상한 마음도 떠오른다. 길이 있어서 걷는 것이 아니라, 걷는 이가 있어서 길이 생긴다지 않는가?”
아무도 스스로 택하여 이 세상에 오지 않았더라도 가야 할 곳은 정해졌다. 김 목사는 그 여정을 두고 기도한다. 세상의 어디를 행해 걷든 그 여정이 내 삶의 중심이신 그분을 향한 것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그 길은 요약하자면 공동체와 더불어 걷는 길, 주체적인 ‘나’를 세워가는 길, 교회와 세상의 현실 앞에서 가야 할 길들이다. 길을 가는 이의 걸음을 굳세게 하는 가치는 평화이며, 생명이며, 섬김이다. 그래야만 그 길이 또 누군가에게 좋은 이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로서 그의 바람은 그가 걸은 길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사람과 자연 사이를 이어주는 데 있다. 그래서 <길은 사람에게로…>는 그의 말처럼 그의 여정을 그린 지도처럼 보인다.
김 목사에 대한 추억은 그의 방에 대한 느낌과 평행한다. 가볍지 않은 책들이 잘 정돈된 그의 방에 들어서면 그가 끓여낸 차 한 잔의 향과 더불어 어느새 요동하던 모든 심사가 제 자리를 잡아 고요해지는 경험을 누렸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좋은 시간이었다. <길은 사람에게로…>를 꺼내 놓고 나눈 며칠 전 대화에서도 소재는 간단하고 말 길도 가지런하였다. 당장 글이 되어도 좋을 몇 마디를 수첩에 기록하였다.
“일제시대를 살며 민족의 길을 밝혀주던 한 신앙 선배는 밤에도 성경을 읽다가 마음이 뜨거워지면 찬물을 끼얹어 끓는 마음을 가라앉힌 뒤에 다시 성경의 안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얼음 같은 이성으로 하나님의 길을 물었고, 그 힘으로 고난의 시대를 살아간 것이지요.”
냄비처럼 달아오르고 푹 떨어지는 신앙의 한계를 체험하여서일까? 그의 지적은 나를 향한 듯 하여 부끄러웠다. 그는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철저히 자신을 돌아보던 ‘심학’의 사례를 들며 성찰하지 못하는 신앙의 경박스러움을 경계하였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뜻을 구하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이에요. 때로 국가의 이익을 구한다 하지만 이것이 하늘의 뜻과 어긋날 때도 많지요. … 성찰하는 우리들이었으면 해요.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직면하게 함으로써 미움과 원한의 마음까지 녹이는 것입니다. 하늘의 뜻과 어긋나는 마음, 그것이 우상이고, 내 마음의 우상과 부딪치려는 자세가 성찰인 것이지요.”
“예언자의 시선은 하나님을 통해서 바라본다”는 아브라함 조수아 헤셸의 말을 인용하며 그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직선 아닌 곡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눈을 바라볼 때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그래서 슬플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글은 슬픔에 뿌리 내린 ‘애가’처럼 들린다.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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